처음으로 문장이 몸에 남았던 날

윤동주를 필사하며 알게 된 쓰기의 힘

by 하얀 오목눈이

다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된 건
의외로 조용한 순간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아무 문장도 나오지 않던 날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내가 처음으로
글이 아니라 문장을 몸으로 느꼈던 날을.

고등학생이던 나는
시를 쓴다기보다 베끼고 있었다.
윤동주의 시를,
한 글자씩 공책에 옮겨 적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는
그땐 몰랐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시들을 눈으로만 읽을 때와
손으로 따라 쓸 때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 남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문장을 처음 필사했을 때,
나는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글자를 옮겨 적는 동안
이 문장이
머리가 아니라 손과 가슴에 남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문장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견뎌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윤동주의 시는
화려하지 않았다.
크게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돌아가게 되었다.
그건 아마
그 시들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언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필사는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문장을 소유하려는 마음 대신,
문장 앞에 서게 만들었다.
그 앞에서 나는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정직해지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멋진 표현보다
버틸 수 있는 문장을 생각하게 되었고,
남에게 보일 글보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문장을 고민했다.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그 고등학생의 필사는
이미 시인이 되려는 연습이 아니었다.
그건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아주 이른 다짐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도
글이 막힐 때면
나는 새로운 문장을 찾기보다
오래된 문장으로 돌아간다.
윤동주의 시를 다시 펼치고,
천천히, 다시 써본다.

그때마다 느낀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새로운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걸.

윤동주를 필사하던 그날,
나는 아직 몰랐다.
그 조용한 시간이
내 글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될 줄은.

하지만 분명하다.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날
한 문장을 끝까지 써 내려가던
그 손의 기억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