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평원, 무너진 요새

산티아고 순례길 Day14

by 재인

메세타 평원.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고원지대는 해발 800m~900m애 달하는 고지대지만, 완벽하게 평평한 지형이라 그런지 유난히 춥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헤치며, 어제 빠예야 식탁을 함께했던 제프 부부와 다시 마주 걷게 됐다. 제프는 고든램지를 닮은 캐나다에서 온 순례자인데, 정말 유쾌한 사람이었다. 어제의 비를 떠올리며 ”rain, rain, rain!”하고 빠르게 말하자,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더니, 제프는 곧 “sunny, sunny, sunny!”하며 받아쳤다. 아마 아내가 ‘말이 씨가 된다’고 한마디 한 거 아닐까 싶다. 제프와 그런 제프를 잘 받아주는 아내는 천생연분 같았다.


뒤편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지금까지 본 일출 중 가장 아름다웠다. 걷기 아쉬울 정도로. 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고, 덩달아 제프도 자꾸 멈춰 섰다. 내가 미안하다고 웃으며 다시 또 돌아보자, 제프는 “Better? Back, Back, Back!”이라고 말하며 나를 뒤로 이끌었다. 결국 우리 둘은 진짜로 뒤로 걸었다. 너무 웃겨서 끌려가듯 따라가는데, 제프의 아내는 이미 저 멀리 앞서 걷고 있었다. 유쾌한 부부다.


메세타 평원은 순례길에서 내가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다. 저 멀리 시야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이, 말 그대로 평원. ‘아. 이런 게 평원이구나.’ 산도, 언덕도 보이지 않고, 바다의 지평선이 아니라 들판의 지평선이 펼쳐졌다. 그렇게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첫 마을이 나올 때도 됐는데 저 멀리까지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마을이 안 보이지?’ 지도가 잘못된 건가? 의아해하며 걷던 그때,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이 나타났고, 그 아래로 ‘온타나스‘라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마을이다!” 속으로 외쳤다. 마치 평원 한가운데 성당을 중심으로 피어난 마을 같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온타나스 입구에 스페인 국기 옆에 태극기가 함께 걸려 있었다. 함께 아침을 먹으려던 제프를 포함한 외국인 순례자들이 “왜 여기 한국 국기가 있어?” 하며 나에게 묻기 시작했지만, 사실 나도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된 건데, 그 국기를 걸어둔 알베르게에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머물 예정이어서 미리 달아놓았던 거라고 한다. 아무튼 그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괜히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온타나스의 작은 바에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주문했는데, 그곳에서 ’ 애슐리‘라는 미국인 순례자를 만났다. 또래의 여자였는데, 먼저 말을 걸며 “한국에서 2년 정도 살았어요”라고 했다. 애슐리는 한국에서 영어선생님으로 일했었고, 한국 음식이 정말 맛있고 그립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도착할 ’ 카스트로 헤리스‘에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곳에서 비빔밥을 저녁으로 준다고 알려주었다. 애슐리는 고맙다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자기가 직접 뜨개질해서 만든 하트모양 키링을 나에게 건넸다. 눈이 커질 만큼 감동이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시 도착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카스트로 헤리스로 가는 길은 꽤 멋있었다. 폐허처럼 무너진 성벽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알베르게와 쇠로 된 예수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긴 다 무너졌네.” 중얼거리며 돌담을 넘었는데 뚫린 지붕아래로 야윈 예수상이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묘하게 슬펐다. 거기서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게 ’쎼요‘를 찍고 지나왔다. 카스트로 헤리스는 큰 마을이었고, 성당이 세 개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었다. 유명한 ’ 오리온‘ 알베르게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데, 저녁에 한식을 제공하고 간식으로 라면도 판매하는 곳이라 한국인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길에서 만난 많은 한국순례자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부르고스부터 눈에 익숙했던 중국인 순례자와 비슷한 시각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고, ’ 무스타파‘라는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침대 배정을 하던 중, 함께 도착한 중국인 순례자가 ’왜 자신에게 1층 침대를 주지 않느냐 ‘며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고, 무스타파는 여러 번 우리에게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사실 알베르게에선 1층 침대를 배정받는 게 쉽지 않다. 나이가 많거나 부상을 입은 순례자들이 오르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사정이 반영되기도 한다. 물론 나도 1층이 편하다. 하지만 매일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공간에서 배려 없이 요구만 한다면 그건 모두가 정해지 않아도 아는 순례길의 룰과는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순례길에선 모두가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낸다. 그런 작은 ㅣ배려들이 쌓여 걷느라 고단했던 하루를 풀어나가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 중국인 순례자는 꽤 오랜 시간 궁시렁 거렸고, 연신 사과하다 결국 친해져 버린 무스타파와 레트리버 삼바, 그리고 고양이 골프와 한참을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비빔밥을 기다리던 오후, 알베르게 뒤편으로 절벽처럼 이어진 뒷산이 보였다. 딱히 올라가 볼 생각은 없었는데, 어느샌가 그 앞에 서있었다. 크록스를 신고 오르기엔 꽤 험한 지름길이었지만 돌아서 오래 걸리는 길은 후보에 없었다. 절벽을 타며 발바닥부터 소름이 돋았지만, 그냥 올라갔다. 그 산 위에는 무너진 요새가 있었다. 디즈니에 나올 법한 건물은 아니고, 오래되어 몰락한 요새. 우리나라 수원화성 같은 느낌이었다. 별생각 없이 올라갔다 요새 안에 전시된 복원 이미지들을 보니, 이곳이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을 공간이었겠구나 싶었다. 지금은 조용한 마을이지만, 몇백 년 전에는 이 작은 요새아래 마을에서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들이 오갔을 그 공간이 상상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 위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은 장난감으로 만들어놓은 마을 같았다. 도화지 같은 평원 위에 버티고 있는 무너진 요새. 그 밑으로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들이 흩어져 있었다. 내가 메세타 평원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 인 거 같다.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 같아서, 그 위에 내 걸음과 기억으로 이 풍경들을 하나씩 그려가는 기분.


내려오는 길에 한국인 아버님 한 분이 절벽 아래서 서성이고 계셨다. 뭐 하시냐고 물으니, 아몬드나무에서 떨어진 아몬드를 줍고 계셨다. 나는 그날 처음 아몬드 열매를 봤다. 겉껍질을 까면 나오는 딱딱한 껍질로 또 깨야 그 안에 우리가 흔히 먹는 고소한 아몬드 씨앗이 나온다. 아버님과 나는 돌멩이로 열매를 깨서 아몬드를 먹었다. 세상에, 이렇게 고소할 수가! 초콜릿 속 아몬드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다람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 아버님과는 이전에도 몇 번 마주쳤지만, 서로 대면대면한 사이였는데, 이 날 순례길을 걸으며 계속 마주치고, 아몬드까지 먹으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이버님은 주머니에 한가득 아몬드를 챙기시더니, 벌써 저만치 내려가있는 아내분께 갖다 드린다며 인사하고 내려가셨다. 나는 아직도 그날 먹은 아몬드 맛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