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22
도시를 빠져나오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조금 지루하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빠르다. 안좋아진 다리 상태때문에 보낸 동키때문일까? 어두운 새벽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었고, 나는 해가 빨리 뜨기만을 바라며 라이트를 켜고 걷기 시작했다. 그 때 어디선가 ‘딸랑.. 딸랑..’ 소리가 들렸다. 뭐지? 계속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에 긴장이 점점 커졌다. 어둠 속에서 라이트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기에, 나는 은근히 무서워졌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다가 결국 뒤를 확 돌아봤다. 거기엔 나의 라이트를 따라 조용히 걷고 있던 할아버지 순례자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민망한 듯 웃으며, 이제 해가 좀 떠오른 것 같다고 조용히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딸랑딸랑 울리던 그 소리는 그의 주머니 속 동전들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나는 한참을 키득 거리며 걸었다.
여전히 첫 마을에서는 아침을 먹는다. 작고 소박한 가게가 하나 있었고, 막 문을 연 듯한 사장님은 분주한 와중에도 노련한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순례자들의 주문을 받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계셨다. 좁은 골목 안, 테이블 몇 개 놓인 공간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순례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남미 ‘코스타리카’에서 온 ‘프란체스카‘.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 그의 넘치는 에너지 덕분인지 그 순간 골목 전체의 공기가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분홍빛 햇살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경사진 길이 많았다. 중간에 정글 같은 숲이 나타났을 떈 ‘설마 악어라도 나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순례길에 늑대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왠지 그보다 더 신기한 동물이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길가엔 왕버섯도 있었고, 두꺼비도 봤다. 완만한 오르막 경사진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막상 지금 돌아보면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
그렇게 걷다 길에서 자주 마주쳤던 ‘제이크’라는 뉴질랜드 순례자를 다시 만났다. 제이크는 나와 당나귀가 있었던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함께 했었다. 원래는 잘생긴 아들과 함께 걷고 있었는데, 오늘은 혼자였다. 아들이 발 상태가 안좋아져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다고 했다. “유감이야”라고 말하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이크가 ’너 포도 좋아해?‘하며 가방에서 커다란 포도 한 송이를 꺼냈다. 헉.. 그걸 쳐다보던 그 짧은 찰나에 제이크가 내 손에 포도를 쥐어주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갔다. 난 한손에 포도를 들고, 다른 손으로 하나씩 따먹으며 “이걸 어떻게 다 먹어..”라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걷다 만나는 순례자들에게 “부엔까미노!” 인사를 건네며, “너 포도 좋아해?”라고 묻자, 상대 순례자가 우리와 똑같은 표정으로 또 똑같은 포도를 꺼내들었다. 도대체 이 포도.. 다들 어디서 얻어 온거야! 그렇게 포도를 들고 다들 웃었다.
오늘 도착한 산타 콜롬바 데 소모사는 메세타 평원을 지나 본격적인 산악 지형으로 들어가기 전, 작은 관문 같은 마을이다. 그래서일까.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갑자기 비가 내렸다. 마치 “여기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야. 한번 느껴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뭐 땀도 많이 흘렸으니 오.히.려.좋.아 날카로운 바위들이 깔린 산길을 따라 도착한 폰세바돈은, 마치 갈라시아로 향하는 문턱에 놓인 마을같았다. 산 위에 자리한 집들은 다들 산장 같았고, 내가 묵게 된 알베르게도 커다란 오두막 산장 느낌이었다. 사장님은 피자집도 운영하시는 분이었는데, 체크인만 도와주고 금세 피자를 굽기 위해 떠났다. 씻고 나서 그 피자집을 찾아갔는데, 무척이나 무뚝뚝한 얼굴과는 다르게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내가 맛있게 먹으며 계속 쌍따봉을 날리자, 얼굴에도 살짝 미소가 번졌다.
밖엔 계속 비가 내려 알베르게에 갇힌 하루.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다 다시 만난 ’프란체스카‘ 오전에 처음 인사를 나웠던 그는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나에게 다가와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랄 다시 한 번 외쳐보라고 했다. 내가 크게 ”그라시아스!“하고 말하자, 그는 “카와이!”하며 웃었다. 아마도 아시아 문화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귀엽다’라는 표현이었겠지. 그런 표현을 나에게 건네준 것도, 조금은 어색한 단어 선택이 주는 귀여움도 모두 고마웠다. 그 이후로 나는 ‘그라시아스!’를 외칠 때 마다 조금 의식하게 되었다.
생장에서 함께 출발했던 순례자들과는 어느새 템포가 달라졌다. 누군가는 연박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고집이 생겨서 매일 쉬지않고 걷고 있었다. 처음엔 이 모든 흐름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지만, 언젠가 그들이 버스를 타고 내 앞으로 지나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마음이 조금 헛헛 했다.
우리는 하루 이틀 차이로 비슷한 지점을 걷고 있었기에, 큰 마을쯤에서 다시 만날거라 생각했다. 함께 걸었던 기억이 있으니, 다시 함께 걷게 될 거란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일정이 촉박했던 그들은 이미 나보다 앞마을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어딘가 턱 막힌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왜 걷지 않지?’.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걸까?’하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나름의 오기도 생겨서, 그들에게 지지않겠다는 마음으로 더 묵묵히 발을 내디뎠다. 그런게 그 감정의 바탕을 들여다보니, 그저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내 옆에 없다는, 외로움 섞인 심술이었다. 돌아보면, 그건 걷는 방식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함께 걷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표현이 서툴렀다는 걸,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열심히 했는지 따질 수 없는 길 위에서, 나는 왜 나만의 기준으로 ’최선‘을 정하고 그 안에서 순위를 메기려 했을까. 시작점은 같을지 몰라도 모두의 여정이 다르다. 걸음을 멈추는 이유도, 다시 걷기 시작하는 계기도, 그 모두가 소중하다. 결국 각자의 길 끝에서 바라보게 되는 풍경은 저마다 다른 색과 결로 다채로울 것이다. 지금은 안다. 함께 걷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충분히 아름다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