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 자격증 6개를 따고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제대로 하기 위해선 자격증이 필요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일식이었다.
그중에서도 일본 가정식과 경양식.
평범한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음식들.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음식들이다.
첫 번째 도전은 양식이었다.
일식과 경양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같은 식탁 위에 오르는 메뉴들이 겹쳤고, 기술과 구조도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경양식은 내가 좋아하는 킷사 문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장르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일식으로 들어가기보다, 양식의 기본을 먼저 익히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일식을 더 깊게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일식. 내가 결국 가야 할 목적지.
동경하던 음식을 이제는 손으로 구현해야 했다.
나폴리탄과 함바그, 돈가스처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다. 나는 그런 음식이 좋았다. 단순히 한 끼가 아니라, 다시 찾게 되는 그 익숙한 느낌.
마지막은 제과, 제빵.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쓰이게 될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와가시로 대표되는 전통 디저트(화과자, 양갱, 앙 미츠 등)도 강하지만, 양과자 역시 하나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분야는 달라도, 결국 하나의 식탁 위에서 연결될 거라고 믿었다.
“최대한 빨리, 하지만 깊게.”
방황하던 1년은 오히려 확신으로 굳어졌다.
늦게 시작한 만큼, 밀도로 증명하기로 했다.
1년 동안 38번 시험을 봤고, 그중 32번을 떨어졌다.
양식으로 시작해 일식, 제과, 제빵.
거기에 일본어 N3와 운전면허까지 더해지자 1년은 하나의 시험표가 됐다.
필기와 실기를 합쳐 38번.
떨어지면 다시 접수했고,
다음 주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갔다.
시험장은 익숙해졌지만, 포기는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공부와 거리가 멀다’고 말하던 내가 좋아하는 것 앞에서 부릴 수 있었던 유일한 사치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이었다.
나를 가꾸는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요리에 미쳐 있던 그 1년 동안,
나는 단 한 벌의 옷도 사지 않았고 미용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 수험생 같은 차림.
시험장만 오가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몰골이 10수생 같다”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패션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나는 오로지 ‘맛’이라는 본질에만 남아 있었다.
자격증을 하나씩 손에 쥐며 깨달았다. 자격증은 재능의 증명이 아니라, 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걸.
물론 자격증 없이도 정점에 선 사람은 많다.
그래서 때로는 이 종이들이
작은 허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한다.
안 딴 사람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이만큼 진심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으니까.
마지막 자격증을 손에 넣었을 때,
기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하나를 끝낸 느낌이지, 아무것도 끝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이제 진짜 뭐 하지.”
원하는 자격증은 다 땄지만, 그건 시작선에 서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었다.
시험에는 정해진 답이 있었다.
실기 역시 정해진 메뉴를 외우고, 반복해서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익숙해지기만 하면 누구든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분명해졌다.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내가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선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시험에는 답이 있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없었다.
“이제는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 구간이었다.”
나는 1년 동안 38번의 단추를 달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을 옷.
완성이 아니라, 시작.
나는 그제야 요리라는 세계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됐다.
이제는, 버티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해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