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 레시피를 파헤치던 시간이, 사람을 모으는 식탁이 되기까지
나는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만 하면 내가 궁금한 것, 만들고 싶은 것,
거의 모든 레시피를 찾을 수 있으니까.
레시피를 볼수록, 더 궁금해졌다.
같은 음식인데도 사람마다 맛이 전부 달랐다.
그래서 알게 됐다.
레시피는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걸.
나는 레시피를 정말 많이 파헤친다. 누가 보면
“저렇게까지 한다고?” 할 정도로. 예를 들어 규동을 만든다고 하면, 한 곳만 보지 않는다.
네이버에서 한 번, 야후재팬에서 다시 보고, 구글과 유튜브까지 뒤진다.
언어도 상관없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방법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명한 레시피도 본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 했고, 이미 검증된 방식.
그리고 체인점의 레시피도 찾아본다. 정확하게 공개되진 않지만, 비슷하게 재현한 방식들이 쌓여 있다.
그런데 내가 끝까지 보는 건 항상 마지막이다. 조회수가 낮고, 구독자가 많지 않은 사람들의 레시피.
이건 내 기준이다.
간절함은 결과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하다. 나도 만들어보는 입장이니까,
간절함은 결과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믿기에,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려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렇게 모은 레시피들을 하나씩 만든다. 유명한 방식, 검증된 방식, 그리고 간절하게 만들어진 방식까지.
전부 다.
그리고 비교한다.
이건 왜 이 맛이 나는지, 저건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 같은 재료인데도 자르는 방식 하나로 맛이 달라졌고,
소스의 비율이 조금만 바뀌어도 전체가 달라졌다. 그래서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시 만들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오늘은 뭘 만들지”가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아졌나”가 남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켓컬리 박스를 뜯었다. 재료를 꺼내고, 손질하고, 다시 조리했다.
같은 메뉴를 여러 번 만들었다. 간이 조금만 어긋나도 처음부터 다시였다.
그렇게 메뉴는 점점 늘어났다.
레몬소바, 치킨난반, 오리소바, 가츠동, 오야꼬동, 규동, 차슈까지. 처음엔 하나씩이었다.
그걸 제대로 만들기 전까지는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욕심이 붙기 시작했다.
오코노미야키도 해보고 싶고, 타코야키도 해보고 싶고. 혼자 먹기엔 과한 메뉴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결국, 사람을 불렀다.
처음엔 그냥 자연스러웠다.
“와서 먹을래?”
보내고 나서야 생각했다.
이걸, 남이 먹어도 괜찮은 상태인지.
혼자 먹을 땐 괜찮았던 음식이 누군가 앞에 놓인다고 생각하니까 기준이 달라졌다. 괜히 한 번 더 간을 봤다.
사람들이 온 직후 문이 열리고, 하나 둘 앉았다.
처음엔 다들 조용했다. 한 입 먹고 나서야 말이 나왔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 한마디에 다음 접시를 바로 올렸다.
처음엔 음식 얘기였는데,
어느 순간 아무 얘기나 하고 있었다.
웃다가, 다시 먹고, 또 다음 메뉴를 기다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계속 불 앞에 서 있었다.
본가에 살고 있었고, 부모님은 친구들이 오는 걸 늘 반겨주셨다.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은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친구들을 집에 불러 놀고, 엄마가 밥을 해주고,
식탁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던 기억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고 나서는 오히려 더 자주 모였다.
보통은 본가에 친구를 잘 부르지 않게 되는데,
나는 반대였다.
학생 때보다 더 많이 불렀고, 더 오래 머물렀다. 친구들은 단순히 밥만 먹고 가는 게 아니었다.
아빠는 취미로 사주를 봐주셨고, 식탁 옆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음식이 중심이었지만, 결국 남는 건 그 시간 자체였다.
아침부터 재료를 정리하고, 손질을 끝내둔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바로 먹을 수 있게. 불만 켜면 시작되는 식탁.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나폴리탄, 나베, 몬자야키. 그때그때 먹고 싶은 걸 만들었다.
메뉴는 중요하지 않았다. 식탁이 계속 이어진다는 게 중요했다.
https://youtu.be/n60jKLgyQcU?si=W-rUdAyqiVli2WBc
이유 없이 모였고, 목적 없이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서 계속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내 안에 있는 걸 확신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좋아했다.
수익 구조도 없이, 열정만으로 이어지던 이 식탁은
결국 나를 집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더 이상
집에서만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