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 타협하지 않는 집착이 만든 결과
나는 무언가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적당히 해보는 건, 애초에 내 선택지에 없었다.
물건 하나를 사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살 거면 제대로 된 걸 샀고, 그게 아니면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
어설픈 선택으로 결국 후회하는 과정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옷도 그랬고,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만들 때, 과정은 중요했다.
그 안에서 경험을 얻으니까.
하지만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과정은, 내 기준에서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필요한 건, 하나씩 갖춰갔다.
장비든, 재료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 때까지.
결국 나는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있었고,
그게 요리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말했다.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돈도 안 되는 일에 유난 좀 그만 떨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게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사업가인 아빠와 언니 눈에 나는,
수익 구조도 없이, 열정만 쏟아붓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과해도 너무 과한 '몰입'의 시작]
남들은 연애할 때 도파민이 터진다는데,
나는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때 더 강하게 몰입했다.
그래서 요리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내 레이더에 걸린 건 ‘디저트’와 ‘일본 요리’였다.
나는 밥보다 밀가루, 식사보다 간식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디저트부터 파고들기 시작했다.
일본 음식에도 빠져 있었지만, 초반에는 특히 양과자와 미국식 디저트에 깊게 빠져 지냈다.
일본의 제과 기술에 끌렸다.
휘낭시에, 까눌레, 마들렌처럼 기본적인 구움 과자일수록 디테일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시피를 찾을 때도, 자연스럽게 일본 자료를 더 많이 참고하게 됐다.
치요다 틀, 요시다 틀 같은 장비부터 한국에 없는 직구 재료들까지(스프링클, 리큐르 등), 필요한 장비와 재료를 하나씩 채워갔다.
한편으로는 미국식 디저트도 좋아했다. 그건 그냥, 취향이었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면서도 외국 유튜버의 영상을 일시 정지해 가며 단어 하나하나를 번역기에 검색했다.
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10번 넘게 멈추고 다시 보기를 반복했고, 손의 움직임까지 그대로 따라 했다.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 나는 재능으로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들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건 취미라고 부르기엔, 선을 넘은 상태였다.
예를 들어 '오뎅(おでん)' 하나를 만들 때도 내 집착은 끝을 달렸다. 기꼬만 간장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물론 기꼬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실제로 그들의 훌륭한 기본 재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궁금했다. 그 너머의 맛이.
결국 일본 현지 간장 랭킹을 뒤졌고.
랭킹 1위를 차지한 쵸코 무라사키(超特選 むらさき)'를 구매대행으로 공수했다.
엄선된 대두와 밀, 소금과 쌀로 발효 숙성시킨 본양조(本醸造) 간장. 일반 간장과는 결이 달랐다.
한 번 맛을 보자 차이가 명확했다.
설명이 아니라, 혀로 바로 느껴졌다.
은은한 단맛.
부드러운 짠맛.
그리고 끝까지 남는 묵직한 감칠맛.
거기에 '야마키 시로 다시'까지 더하자 국물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재료 준비는 더 집요해졌다.
흑곤약과 치쿠와를 구하려고 모노마트를 내 집 앞 슈퍼처럼 드나들었고,
무 하나를 썰어도 국물에 흐트러지지 않게 모서리를 하나하나 깎아냈다. ‘카도토리(모서리 다듬기)’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를 길게 돌려 깎는
‘가츠라무끼(桂むき)’까지 따라 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하고 있었다.
그걸 집에서 하고 있는 내가, 정상일 리는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pDzek9BmWE&t=553s
오뎅 전용 틀 냄비까지 따로 샀다. 주변에서는 과하다고 했지만, 내게는 그게 기본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확신이 들었다.
맛있다.
이 정도면, 내 기준은 넘었다.
그 기쁨을 혼자 두기 아까워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만든 국물을 먹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순간마다, 나는 깨닫고 있었다.
아, 나는 이걸 좋아하는구나.
거실 테이블 위에서 놀이처럼 즐기던 이 섬세한 칼질이,
훗날 요리학교에서 생존을 위해 매일같이 반복해야 할 혹독한 수련이 될 것임을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오사카에 살던 시절,
나는 인도 요리도, 정통 일본 카레도 아닌
‘스파이스 카레’를 유독 좋아했다.
고체 루를 녹여 만드는 카레가 아니라,
수십 가지 향신료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내는 카레.
그 방식이 좋았다.
맛도, 방식도, 그리고 그 위에 얹히는 플레이팅까지.
반파 쿠 공원에서 열리는 커리 페스티벌을 찾아다니고,
랭킹 잡지를 훑으며 그 개성 있는 맛들을 즐겼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온 2018년, 문득 그 맛이 그리워졌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직접 만들기로 했다. 야후 재팬과 유튜브를 뒤지며 독학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먹고 싶어서.
스파이스 카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설계할 수 있었다. 기성품인 고체 루를 단 1g도 넣지 않고, 오직 내 취향대로 0에서 100까지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때부터였다.
우리 집 주방이 향신료 창고가 된 건.
https://www.youtube.com/watch?v=wbcPoPSJKLQ
가루 스파이스와 홀 스파이스의 조합에 따라
맛은 수백 가지로 나뉘었다. 나는 그 변화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큐민, 코리앤더, 카이엔페퍼를 기본으로 가람마살라의 배합을 연구하고, 화자오와 정향, 팔각과 시나몬 같은 다양한 시드(Seed)를 소분하며 나만의 '황금 비율'을 찾아 나갔다.
양파를 30분씩 볶고, 생토마토나 토마토 주스를 넣어 페이스트를 만드는 과정은 흡사 정교한 실험 같았다.
우유와 버터를 듬뿍 넣어 부드러운 치킨 커리를 만들지,
물과 소금만으로 깔끔한 소고기 커리를 만들지 결정하는 그 모든 순간이 재밌었다.
진짜로.
어느 날, 버터를 사러 잠깐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아파트 3층 전체에서 카레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우리 집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 우리 가족이 왜 나를 포기했는지 알겠더라. 일주일 내내 카레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내가 스파이스 커리를 좋아한 또 다른 이유는,
플레이팅이었다.
맛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나를 끌어당긴 건, 어떻게 보여주느냐였다.
같은 커리라도, 누가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오쿠라와 그린빈으로 초록의 선을 긋는다.
그 반대편엔 당근 라페의 선명한 오렌지를 얹고,
전분 칩과 반숙 계란으로 높낮이를 만든다.
접시 위에 색을 쌓아 올리다 보면, 나는 어느새 커리가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런웨이를 세팅하듯, 한 접시를 연출하는 기분.
오사카에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주방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3분 카레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한 알의 씨앗이 볶아지며 향을 내고, 그 향이 쌓여 하나의 접시가 된다.
그 과정이, 가장 재밌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멈출 수 없는 쪽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