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나 받아볼까 해서 받아본 사람
늦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급한 발걸음을 재촉하여 닿은 '이내카페'.
그렇다. 질리도록 했던 그 소개팅을 나는 또 나갔다.
결혼시장에서 나와 자유를 만끽한 지 얼마 채 지나지 않았을 때쯤이었다.
지인의 사람 한 번 만나보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던 건 내가 더 이상 시장에 갇힌 물고기가 아니여서였으리라.
사진이나 받아볼까 했던 남자를 보러 밤 외출을 나가는 나 자신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더 편안하고 사람다운 존엄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하나, 소개팅 장소에 입성하기 전의 마음과 달리, 만남장소에 인접했을때 상대의 "으악 떨리네요" 이 한마디 카톡에 옴 붙은것 마냥 나까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소리가 들리듯 떨리는 기분이 나의 온몸을 에워쌓는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물음을 던지며 카페 입구에 진입, 그가 있는 왼측 편으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수채화 같던 그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그의 하얀 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천천히 일어서면서 나를 반겨주었다.
사진이나 받아볼까 해서 받아본 사람인데, 뭐야 사진이랑 딴 판으로(좋은 의미로) 다르잖아!
엄청 잘생긴 남자가 내 앞에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2편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꽃미남에 매우 강하다. 한 편으로는 꽃미남의 출현에 기쁘기도 하였다. 잘생긴 그의 미소를 보니 나까지 넘실대는 감정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꽃미남에 매우 강한 나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기로 했다.
사슴: 안녕하세요, 조금 기다리셨지요? 사슴이라고 합니다.
노루: 괜찮습니다. 하하, 노루라고 합니다. 오시는데 길이 막혀서 고생하셨겠어요.
사슴: 저야 늦은 거 같아 죄송한걸요.
노루: 하하하, 아니에요. 막상 뵙게 되니까 더 떨리는 거 같아요, 후~~. 사슴씨 뭐라도 드셨어요?
사슴: 아니요. 뭘 먹고 오진 않았는데 괜찮아요!
노루: 저녁도 안 드신 거예요? 그럼 커피 마시고 저녁 먹으러 갈까요?
여느 소개팅과 달리 나도 똑같이 긴장을 했지만, 내가 마치 소개팅을 백 번도 넘게 한 사람이라면 노루는 소개팅을 처음 해보는 고등학교 3학년 짜리 남자아이 같았다. 또 다른 비유로, 나는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소개팅을 이어가려 노력했다면, 노루는 일단 나온 소개팅에 뜨거운 불폭탄을 맞은 아기치타 같았다. 우리는 카페에서 이런저런 호구조사(?)나 일상대화들을 좀 더 했는데 노루는 자신의 말을 끊지 못하고 계속 말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은 말하는 게 신이 나서 멈추지 못하는 게 아닌, 전면의 여성 앞에서 스피커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필사의 정신처럼 보였다.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자 노루는 말을 하다가 너무 머리가 아팠는지 잠시 현기증이 왔다며 머리를 잡았다.
사슴: 허걱! 너무 힘드신 거 아니에요? 밥은 괜찮으니까 집에 갈까요?
노루: 아, 아니에요... 제가 운동을 너무 많이 하고 와서 그래요. 요즘에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나 봐요.
사슴: 그럼 밥 먹으러 가야겠다!
나는 서둘러 노루와 밥을 먹으러 카페 밖으로 나왔다.
1월의 한기가 도는 겨울밤 모락모락 김을 뿜으며 함께 밥 집을 걸어가는데 훤칠한 그의 키가 더 돋보였다.
우리가 가기로 한 이차돌까지는 두 블락(약 500m)은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산책을 하면서 잠시 정신을 환기하고, 함께 걸어보면서 호감도도 눈여겨볼 수 있는 기회였다.
노루는 아직까지 뻣뻣해 보였고, 나는 저 사람이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고장이 난 건지, 나한테 반해서 고장이 난 건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연애고수까진 아니어도 상대의 심리쯤은 이 정도 되면 얼마든지 파악이 가능하다 싶었는데, 스스로 많이 자뻑했구나 싶었다.
사슴: 키가 정말 크시네요! 실례지만 키가 몇 센티 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노루: 아 저 182센티입니다.
사슴: (내가 만나는 꽃미남들은 키까지 다 큰건가.)
서둘러 도착한 밥 집에서 차돌박이 2인분만 시키자는 내 말에 노루는 '사슴씨가 배고프면 안 되니까 남기더라도 3인분을 시키자'는 푸근한 제안을 하였다. 본인은 밥을 먹고 왔음에도 나를 위해 밥집을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식사도 넉넉히 시켜주는 인심이 따뜻했다. 밥이 세팅이 되는 기다림이 있는 동안 노루의 소개팅 이슈로 인한 열기는 모두 가라앉았다. 나는 차분해진 노루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노루: (고기를 구우며) 고기 좋아하세요?
사슴: (고기를 우적우적 먹으며) 네 좋아해요. 노루씨도 좀 드세요!
노루: 네 저도 먹을게요. 근데 다이어트 중이라서 조금만 먹어야 해요. 허허
노루는 그러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렸다. 그 순간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노루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쩍 벌어진 어깨와 툭 튀어나온 대흉근, 알맞게 튀어나온 이두근, 전완근, 날렵한 배와 허리라인까지.
삼십 대 여성이라면,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이라면 좋아할 만한 몸까지 갖춘 것이다!
라는 생각을 1초 만에 접어두고 서둘러 다른 이야기로 화재를 돌리며 고개를 푹- 숙인채 압접시의 고기를 먹으려던 그때였다.
노루는 내 앞접시의 차가운 고기를 가져가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는 불판에 갓 구워진 차돌박이 3점을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