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엄마와 딸의 영혼이 바뀐 러브스토리_비밀

by 오인환

2008년, 해외에 있었다. 그곳의 일상은 이랬다. 아침 8시면 눈을 뜨고 샤워를 한다. 마른 빵을 입에 물고 머리를 말린다. 머리가 마르면 대충 옷을 차려 입고 출근한다. 일과를 마친다. 일과는 5시면 끝난다. 5시가 되면 도시는 모두 불을 끈다. 문을 닫는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중심가는 적막하다. 차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터넷은 느린 걸 떠나, 허무맹랑하게 비싸다. 회사 와이파이가 연결 됐을 때, 무언가 수를 써놓지 않았다면 일과 끝난 5시부터 공허한 시간은 압도적으로 나를 덮친다. 요리를 해보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거나 쇼핑을 해도 7시다. 침대에 누워 천장 무늬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관경이 끝내준다는 이곳의 풍경을 한참을 바라본다. 책을 좋아하던 나는 현지에서 영문으로 된 책을 한 아름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유학파, 현지직장인. 이런 건 한국에서나 보기 그럴싸하지, 외국책을 즐겁게 읽을 자신은 없다. 당시 나에게 획기적인 상품이 바로, '전자책'이었다. '크레마 샤인'이라는 전자책이다. 아주 혹평을 했던 전자책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거의 생명의 은인 같은 존재였다. 전자책으로 책을 구매하면 꽤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전자책을 켜고 밤새 책을 읽었다. 그때 이 책이 고장이 나서 한 동안 보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부탁을 해서 책을 전달 받고 읽었다. 책을 전달 받으면 그 무게 때문에 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때 받았던 책 중 하나가 '비밀'이다.

비밀이라는 소설은 평범한 한 가장에게 일어난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거의 시작과 동시에 '버스 사고'가 난다. 이 사고에서 탑승자 대부분은 사망한다. 다만 딸 모나미가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데, 딸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딸이 아니라 아내의 영혼이다. 이런 아이러니함을 숨기고 아버지와 딸로 살아가기로 그들은 결심을 한다. 소설은 이렇게 전개된다. 딸의 몸속에 들아간 아내. 어떻게 보자면 딸을 볼 수 있고 아내를 만날 수 있지만, 딸을 만날 수 없고 아내를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함에 빠진다. 꽤 흥미로운 소재다.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흔하디 흔한 소설이지만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독창적이다. 해외에서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작가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어쩌면 확인했으나 그닥 기억에 남기지 않았는지 모른다. 다시 '밀리의 서재'를 통해 '비밀'이라는 책을 접했다. 게이고의 소설이라면 믿고 읽겠다는 생각을 하고 선택했다. 비밀이라는 소설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은 있었다. 동명의 다른 소설이라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버스사고의 이야기가 낯이 익었다. 꽤 진행하고 보니,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읽게 된 이 소설은 참 독특했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소설을 읽고 있던 '나'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당시 컴퓨터 없이 전자책으로 일상을 보내던 모습, 한국에서 보내 온 책들을 한 권, 한 권 쌓아두고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던 모습.

특히나 '비밀'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엎드렸던 모습과 그 차가운 공기, 라디에이터에서 나오는 건조하면서도 시큼한 냄새. 비밀이라는 소설이 떠올려준 것은 '내 이야기'였다. 꼭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어떤 음악, 어떤 사진, 어떤 단어를 보면 '휘리릭'하고 시간여행을 할 때가 있다. 같은 시기. 나는 '거북이'의 '사계'라는 노래를 반복재생하고 들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이 노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흐르지만 자신의 미싱기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작업자의 애환을 담은 노래다. 당시 내가 왜 그 노래를 반복재생 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일'말고는 그닥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잘하는 것도 없던 내가 '일중독'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녁 식사를 하면, 혹은 주말이 되면 스피커 하나 들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러 갔다. 그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여러가지가 함께 온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나는 항상 '차이니스 푸드'를 먹으러 갔다. 뚜껑 있는 그릇에 가득 담으면 7.5불만 받는 테이크 아웃 식당이었는데, 거기에 양고기, 닭고기, 볶음밥 등 매번 똑같은 음식만 담았다. 그리고 2.5불 짜리 코카콜라를 사면, 딱 10불을 채울 수 있었다. 어느 때부턴가는 '피쉬앤칩스'에 꽂혀, 그것만 먹고 살았다. 나중에는 '스칼럽앤칩스'만 먹었다. 스칼럽앤칩스'는 가리비 두 개에 감자 튀김이다. 이것을 어릴 때, 부르던 '똥종이' 즉, 갱지에 쌓서 먹는데 여기에도 코카콜라를 함께 먹었다.

애초에 '비밀'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집중이 되지 않고 예전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걸 보니, 언제고 책을 읽고 있었다면 다시 그 책을 접했을 때, 잊혀져 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비슷한 책이 몇 권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피엔스'라는 책과 '시크릿'이라는 책이 그렇다. '사피엔스'라는 책은 누구의 추천으로 구매한 것도 아니고, 유명하다고 들어서 구매한 것도 아니다. 그 책을 내가 왜 선택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분명 기억에 남는 일은 부엌에 앉아, 그 자리에서 그 책의 3분의 2을 읽었다는 것이다. 다 읽지 않고 3분의 2만 읽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재밌어서 였다. 그 자리에서 완독을 해버리면, 내일이 아쉬울 듯 해서, 너무 궁금한 후반부를 의지로 닫아버리고 잠에 들었다. 그러곤 새벽 같이 일어나 완독해버렸다.

더 시크릿은 군대에서 대대장실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아마 사단장 님이이 부대 대대장들에게 일괄적으로 선물한 모양이었다. 대대장님 실을 청소하다가 책상에 놓여 있는 책에 호기심이 가서 첫 장만 열어봤다. 더 시크릿과 사피엔스는 실제로 '원서', '한국어', '이북원서', '이북한국어'를 모두 샀고 아마 최소 10권 씩은 더 구매했던 것 같다.

애초에 독후감이라는 것이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을 적는 것이지, 책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책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건 두 번을 읽게 된 '비밀'이라는 책에서 나는 '게이고'의 이야기보다 나의 이야기가 더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역시 다독하면 향수를 이런 대단한 작가와 함께 묻혀 불러낼 수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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