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 중 하나는, 당근을 먹는 일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어린 시절 나는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었다. 숟가락에 흰 쌀밥을 떠올리면 어느샌가 흰밥 위에는 고기나 햄이 얹어 있었다. 부모님이 잽싸게 밥 위에 소시지 반찬을 올리셨다. 당근이나 양파 같은 야채가 올라가는 경우는 없었다. 먹지 않는 나에게 '고기'를 올리는 것이 그나마 회유였던 것 같다. 어느새 아이의 숟가락에 고기를 얹고 나면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당근'과 '양파'다. 부모님은 야채를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했는데, 마흔에 가까워져서야 야채를 먹게 됐다. 따지고보면 부모님이 숟가락에 얹어도 넣지 않던 야채를 아이는 너무 쉽게 넣게 하는 샘이다. 그거 말고 무엇이 있을까.
아침이 되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알람보다 먼저였다. 어머니는 알람을 맞췄음에도 항상 그 보다 먼저 나를 깨웠다. '1분만 더'를 몇 번하다가 투덜대며 식사 자리에 앉는 일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지지 않으면 나보다 아이가 늦는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하고 선다.
적당히 지저분해도 좋았던 방도, 아이의 장난감과 간식, 옷가지가 섞여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것 치우기도 벅찬 생활 습관은, 더러 아이의 것까지 치우며 말끔히 고쳐졌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아이와 함께 살면서 엄청난 다독가가 됐다. 아이에게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 지독한 책벌레가 되게 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아이와 누워서 책 보는 습관은 아이게만 좋은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고보니 사람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아이에게서 길러지는 모양이다.
아이와 누워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함께 본다. 아이를 위한다는 행동이 꼭 아이만을 위하고 있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릴 때 분명 들어봤던 이야기였는데, 아이와 함께 읽었더니 생소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는 순수하게만 읽혀지지 않는 책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짜임이 탄탄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읽어주느라 연기력과 발성 연습, 발음 교정이 모두 되기도 한다. 최근에 아이와 읽었던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책이다. 분명 이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도무지 기억에 나질 않았다. 차근 차근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동화를 진행하자, 이야기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빠져 들어가는 이야기었다. 아이와 함께 동거하면 이처럼 아이가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나조차 교육시키는 경우가 많아진다. 아이는 '겨울왕국'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최소 30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겨울왕국의 주요 대사는 이제 완벽하게 외웠다. 주요대사 뿐만 아니라, 주요하지 않은 대사도 거의 암기하다시피 했을 정도다.
아이와 이처럼 동화나 그림책, 만화를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워킹데드', '수리남', '프리즌브레이크',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좀비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하거나, 감옥을 탈옥하고,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채워 놓고 살았을 나의 30대는 아이로 하여금 깨끗하게 리프레쉬 됐다. 오늘의 나는 왕자님이 공주님을 구하는 동화와 공주님이 왕자님을 구하는 만화를 보고, 오누이가 엄마를 구하거나, 엄마가 아이들을 구하는 영화를 본다. 거기에는 흉측한 좀비나 마약이 아니라, 호랑이나 늑대 정도가 나올 뿐이다.
'작은 이야기로 삶의 지혜를 얻다'는 '김수민, 송진설, 차은주, 최서원' 작가의 수필이 돌아가며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은 동화를 읽는 초보 엄마의 사연부터 시작해서 부모와의 이야기 자녀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그림책에 대한 애정도 적잖게 담겼다. 어린시절 재밌게 읽었던 '좋은 생각', '연탄길'이라는 잡지와 책에서 처럼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극적이고 반전이 있고 통쾌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잔잔하고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가끔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더 큰 위로를 줄 것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다만 성인들도 그림으로 하여금 더 큰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우리를 감상적이게 하는 것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나무 끝에 달린 빨간 낙엽이다. 그 낙엽은 너무나 단순하고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동화에는 어른들의 책처럼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아이들과 읽어주고 있지 않다면, 잽싸게 메모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적잖게 떠오른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리석게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여기지만, 아이는 나의 입에 당근을 넣게 하고, 게을러지지 않게 하기도 하며, 모범적인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예전 햇님과 바람의 동화가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에서 바람이 벗기지 못한 옷을 햇님은 은은한 볕으로 벗겨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아이에게로 넘겨짐으로써 또다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