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페미니즘에 대하여

by 오인환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운동과 이론을 아우르는 용어



한창,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페미니즘과 관계없이 내용과 소재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에 열광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욕하며, 한동안 대한민국이 페미니즘을 대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이었다. 좋거나? 때로는 나쁘거나?


사실은 이 책을 읽을지는 꽤나 되었지만,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리는 일은 조금 꺼려졌다. 아직도,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거나? 나쁘거나?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극단적으로만 바라볼까? 나도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페미니즘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인 내가 이 책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최근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부모님들의 시대는 '공생'의 시대였다. 나 보다는 가족이 잘되야했고, 가족보다는 국가가 잘되야하는 시대였다. 그들은 나 혼자 잘되기 위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기피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참아가며, 자신의 겪은 일을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 세대이다. 그 시대에는 최고의 가치가 희생이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상대나, 단체가 성장하는 모습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다. 그들은 실제 본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희생으로 성장하는 단체나 상대가 더욱 잘되기를 바라야 했다. 그렇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간섭과 참견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 심리가 발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반면 자식들인 우리는 '경쟁'의 시대에서 자랐다. 치열하게 옆 친구보다 잘해야 했고, 옆 친구보다 빨라야 했고, 옆 친구보다 낫아야 했다. 경쟁의 시대에서는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 공정함이란, 같은 출발점 상에서 시작하여, 남들보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은 결과물을 얻어내느냐로 평가받는다. 부모님 세대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만족시켜 주어야 했고, 단체나 상대보다는 본인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 또한 필연적으로 질투와 비교 혹은 열등감을 만들어 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런 사회적 속에서 살았다. 우리는 열등감의 시대이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그 비교 대상은 내 친구와 옆 학교까지가 고작이었다. 동네에서 축구를 잘하면, 축구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동네에서 얼굴이 꽤나 반반하면, 그 외모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스마트폰만 열면, 호날두와 메시가 드리블하는 영상을 보게 되고, 송혜교, 김태희 등과 같은 미녀들의 보정된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훨씬 우월한 이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살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은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 밖을 모르고 있을 땐,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신의 세계에서 최고였다. 하지만, 그가 세상 밖을 알게 되면, 그는 자신이 우물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심지어, 자신이 개구리였다는 사실에 더 큰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불행한 일생이다.


우리가 세상을 넓게 가질수록, 비교대상은 끝없이 넓어진다. 넓은 세상을 아는 것이 자기 계발을 위해 더 좋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지 잊고 있다. 단지 남들보다 더 낫기 위해서?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나, 자기 계발을 하는 이유는 사실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닐까?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다 보니, 우리의 비교 대상은 나와 너를 넘고, 친구와 친구를 넘어, 남자와 여자로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싸워야 할 건,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나는 남자로 태어나서 '이만큼'이나 불행한데, 너는 여자로 태어나서 '조금 더' 낫으니 형평성에 어긋난다"


이런 말들을 하고 있다.


경쟁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은 빠른 속도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나들보다 낫기 위해, 치열해지게 되고 승부에 집착하게 된다.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딱 2가지가 필요하다. 내가 녀석보다 더 잘되던가. 혹은 녀석이 나보다 더 못되던가.


우리는 녀석보다 더 잘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녀석이 나보다 더 못되길 바라고 있는 샘이다.


경쟁 사회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을 때, 사회 전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해 나가지만, 자신감이 없을 때는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여야 승리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퇴보된다.


지금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옵션 보다, 내가 불행하다면, 너를 더 불행하게 만들어야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


남자들은 군대를 전역하면 복학 날짜를 맞추기 쉽지 않다. 이런저런 핑계로 군 전역 후에는 대학을 3년 정도 휴학하게 된다. 보통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오면 대부분의 남자의 나이는 23살이 된다. 남자들이 군대를 전역하고 2학년으로 복학을 할 때, 보통 여학생들은 석사 학위를 준비하게 된다. 남학생들이 석사를 들어가면, 여학생들은 박사를 들어간다.

이런 단순한 계산으로 나는 남자가 불리한 세상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같은 직급을 갖고 같은 급여를 받더라도, 남자는 힘들거나, 더러운 일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나도 가끔은 그러한 것들이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추석이 되면, 큰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가 하신 요리를 먹고, 어머니가 설거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가 열등하고 누가 우월하다고 단정할 때가 있다. 그것은 비교 대상을 '키'에 두거나, 비교대상을 '학창 시절 성적'에 두거나, 비교대상을 '노래실력' 혹은 '참을성' 등 비교대상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우월과 열등을 나눈다.


하지만 비교대상을 한 곳에 두면, 누가 낫고, 누가 못나고 가 보이지만, 비교대상을 10가지에 두거나, 비교대상을 100가지 1,000가지, 그리고 만 가지 10만 가지로 늘리면, 사실 모든 것은 결국 똑같다. 우월과 열등은 비교 대상을 한정할 때나 가능한 거지, 사실상 모두가 똑같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하며, 남자가 여자보다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68위이다. 행복하지 않은 서로가 서로를 더 불행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북유럽 국가들처럼 행복하지도 않다.


사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련한 책이 아니다. 그저 어떤 여자에 관련한 소설이다. 하지만, 문학은 독자의 주관적 해석으로 완성이 된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여자가 남자보다 행복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 가슴 아프다. 우리가 문학을 문학으로서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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