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이라는 책을 폈다. 이런저런 종류의 소설들이 번호를 맞추어 즐비해 있는 서점 책꽂이에서 언뜻 눈에 띄는 소설 한 권을 발견했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중 임팩트 있는 그 무언가가 나를 이끌었다. 흘려 보아도 눈에 띄는 것은 삼촌이라는 단어, 삼촌이라는 단어는 이 소설 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삼촌이라는 단어는 제주도 방언으로서 흔히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보다 어른인 친척 분들께 부르는 친근한 호칭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호칭들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삼촌’이라는 단어에 더욱 친근함이 느껴졌다. 이 소설의 제목은 단어 선택에 있어서 ‘삼촌’이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 제주의 현대사인 4.3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제주도의 남쪽에 위치한 남원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의귀와 남원 사이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내가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이곳에는 4.3이라는 아픔의 흔적이 없는 그저 한가로운 시골 동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알게 된 우리 동네의 4.3 사건에 대한 얘기들은 나를 더욱더 놀라게 하였다.
내가 살았던 남제주군에 위치한 남원이라는 곳에는 친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께서는 지긋한 연세에 손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일 때면, 종종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시고는 하셨다. 학교 교과서에서만 들어 보았던 일제시대부터, 6.25 전쟁과 같은,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듣노라면 나는 순이 삼촌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머나먼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왠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설의 매력에 빠진 것은 이 밖에도 이 소설의 접근 방식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접근 방식은 4.3을 이야기하는 다른 역사서들과 같이, 그런 딱딱하거나 어려운 역사 이야기에서 벗어나, 마치 부모님을 따라 나서 옆집 웃어른들의 모임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 한 착오를 일으키는 서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유 때문에 더욱더 독자들이 4.3에 대하여 어렵지 않게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생각했다.
소설 ‘순이 삼촌’에서 순이 삼촌은 4.3이 지난 지 한참이나 후에도, 그 후유증을 앓는다. 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게 수십 년을 지내 왔던 순이 삼촌은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할 아픔은 앉고 자살이라는 비극을 택하게 된다. 이것은 현기영이라는 작가가 순이 삼촌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형언할 수 없이 참혹했던 제주 현대사의 비극인 4.3 사건을 되짚어 보고자 했던 것이다.
4.3의 피해가 눈으로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 지를 떠나 그로 인해 평소 생활을 하는 데 있어 불편함을 갖게 된다면 그는 4.3에 의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그 불편함은 유독 순이 삼촌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제주도민들에게는 같은 시기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제주 도민들에게는 그러한 순이 삼촌의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 후유증은 주변 식구로부터 시작해, 여러 주변 인물들에게 까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주변 인물들에게 까지 4.3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을 해 나간다면 결과적으로는 4.3 피해자가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단순한 숫자와 통계로 보는 그런 것과는 훨씬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피해보다 그 피해는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3이 끝난 지 어느덧 6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4.3이 우리 제주도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의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인 지금은 적어도 ‘제주 도민 전체에게 영향을 미쳤다’라고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