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한 폭으로 전달하는 동양 서사_조선미술관

by 오인환

먹이나 색을 점점 옅게 혹은 진하게 칠해서 점층적으로 변지게 하는 효과를 선염(渲染)라고 한다. 영문으로는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부르는다. 이런 선염은 몽롱하고 서정적 느낌을 준다. 경계가 모호한 색감의 변화는 동양 철학의 음양오행을 닮았다. 속이 선염으로 차 있는 반면 동양화는 그 테두리를 진한 선을 이용해 표현한다. 역설이다. 그것이 동양화의 특징이다. 칼처럼 떨어지는 외곽선과 빛처럼 점층적인 선염의 조화다. 이는 유럽 미술과 크게 다르다. 외곽선이 모호함과 칼처럼 떨어지는 유럽미술은 이처럼 동양화의 극적인 차이에 매료됐다.

자포니즘이 유럽에 소개될 때, 유럽 미술계는 정체되어 있었다. 일본의 우키요에는 그 시기 유럽 미술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단순히 원근감과 색체감 등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분위기와 서사를 바탕한 동양화는 어딘가 달랐다. 동양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는 회화방식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서양 회화의 특징이라면 외곽선을 줄여 사실적 묘사를 한다. 반면 동양 회하는 외곽선을 뚜렷하게 그린다. 또한 붓의 힘을 조절하여 두껍고 얇은 선을 나타낸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라는 그림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선비가 그려져 있다. 선비는 악기를 연주한다. 선비의 옆에는 호리병과 문방사우가 그려져 있다. 이 잡화들은 음율감을 표현하듯 굵고 얇은 선을 교차 이용한다. 눈으로 음악의 풍류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양화는 이처럼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통해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화려하지 않은 색감과 투박한 그림체가 가벼워 보이지만 깊고 묵직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에 커다란 영감을 받았다. 당시 예술의 핵심은 '기술력'이 아니라, '표현력' 이었다. 실제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양 예술은 위기에 빠진다. 19세기에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묘사'는 기계가 넘어섰다. 더 이상 똑같이 복사해 낸다는 것이 무의미해 버린 것이다. 미술의 영역이 기술의 영역이 되버린 시기에 이들이 찾은 것은 '도슈사이 샤라쿠'나 '우타가와 도요쿠니'처럼 강렬하게 표현을 강조하는 동양식 우키요에였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샤라쿠의 작품을 모사할 정도였다. 그들이 동양화에 받은 충격이 엄청났다. 그전까지 화가의 역량은 얼마나 피사체를 잘 표현하는가를 고민했다. 다만 동야의 미술은 유럽과 확실히 달랐다. 동양 미술의 중심은 '피사체'의 외형이 아니라 그 서사다. 또한 작가의 감정과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까지 담고 있었다. 사실주의에 벽에 갇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던 유럽은 동양화의 매력에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봤다. 모르고 보면 단순 선과 채색의 그림이지만 작가의 해석을 함께 듣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는 역사와 서사가 있다. 투박하게 찍혀 있는 점은 눈빛을 묘사하고 두께는 힘을 표현하며 직선과 곡선으로 분위기를 표현한다. 손은 어째서 펴고 있는지, 옷차림과 자세, 시선은 모두 사소하지만 중요한 위치를 서사한다.

가장 닮아 있는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을 서사하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가 온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피사체가 보여주고 있는 겉표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고로 작가의 영역이 수동에서 능동으로 넘어섰다. 이런 표현법은 당대 작가에게 아주 매력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모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동양에서 시작했지만 서양에서 더 크게 환영 받았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단순하고 괴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피카소의 초년 작품을 보여주면 그가 화가였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정할지 모른다. 표면만 담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담는 것이 미술의 영역이 되면서 그림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표현력이 됐다.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입체주의 미술 양식으로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나갔다. 그의 그림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피사체 모사를 벗어나 작가의 표현에 집중으로 미술의 방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은 입체주의를 벗어나 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해졌다. 이처럼 미술이 추상적인 것을 담아내고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예술'로 승화한 시발점에는 '자포니즘'이 있었다. 자포니즘은 일본으로 부터 시작했으나, 이름만 그렇지 일본 고유한 문화는 아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중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되는 '신윤복'의 그림은 역시나 최고다. 그의 그림은 확실히 서사적이다. 무엇하나 그저 표현된 것 없다. 각 표현이 그 시대상을 담고 있으며 관계와 전후 상황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라지와 견주어 크게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이유다. 신윤복의 그림은 굉장히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그의 그림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 단순한 외각선와 부드러운 선염의 조화가 이처럼 단순함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동양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배경을 백지화 한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아예 그리지 조차 않는다. 고로 작가의 표현을 직관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볼거리가 풍성한 대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리기 힘든 서양화와 비교한 동앙화의 특징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것이 서양화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국수주의적인 생각으로 예술을 바라본다면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의 다채로움을 난도질 하는 것이다. 당근과 구름을 비교하거나 상어와 밥주걱을 비교하는 것처럼 이는 비교 대상도 아니고 비교 의미도 없다. 예술은 순위를 매기거나 우열을 가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예술은 아주 주관적인 영역이다. 고로 서양화가 동양화보다 더 우월하거나 동양화가 서양화보다 우월한 것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온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현대 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적절한 융합의 역사다. 그 어떤 부분에 우리 조선의 그림도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나 동양의 그림을 보며 서사를 유추해 내는 방식은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과 닮았다. 고로 김홍도, 신윤복 등 천재 화가의 그림들을 그들과 닮은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시대적 행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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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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