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실수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해 보는것이다

촌스러워도 괜찮아

by 오인환

머리가 둔하고 멍청하여 두들겨 맞기 전까지 깨닫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미로찾기 게임을 하면 그냥 가고 본다. 다시 돌아오는 일이 있어도 그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타입이라, 미련하게 덤비고 본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비효율적이고 오래 걸린다. 남들처럼 계산적이고 치밀하고 똑똑하면 좋았겠지만, 어쨌건 나는 두들겨 맞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는 타입이다.

그것이 좋게 작용하면 도전 정신이 되지만, 나쁘게 작용하면 생각없이 움직인다. 일단 저지르고 보면 '어떻게든 된다'는 식이다. 고로 남들처럼 완전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 어설픈 과정을 싹다 드러낸다. 단점과 약점을 피아에게 모두 보여주고 깨닫는다. 길을 잃으면 생각치 않고 일단 걷고 본다. 가다 막히면 돌아온다. 그런 타입이라 일의 끝부분에 만난 사람들에게는 진취적으로 보이고, 일의 초, 중간에 만난 사람들에게는 '어리버리'하게 보인다.

국민학교 시절,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과제가 있을 때면 아버지는 늘 도와주셨다. 농사하실 때 투박한 가위와 밥 한 숟가락을 뜨고 오셨다. 아버지는 엄지손가락으로 밥풀을 떼어다가 종이 위에 짓이기셨다. 그러면 밥풀은 꽤 괜찮은 풀이 됐다. 종이 표면은 밥풀 때문에 우둘투둘했다. 색종이가 아니라 농사에 쓰다 남은 신문지였다는 점은 친구와 달랐다. 문구점에서 파는 물풀과 딱풀이 부러웠다. 친구들은 다 가지고 다니는 것이 왜 나는 없을까 생각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경험은 처음에는 부끄러움이었다. 학창 시절에 비슷한 기억이 더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실내화를 신었다. 실내화 가방에 실내화를 넣고 다니면서 학창시절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실내화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절망에 빠졌다. 실내화는 내 구멍난 양말의 엄지 발가락을 가려주는 유일한 방어막이었다. 그 뒤로 구멍나지 않은 양말을 찾았지만, 언젠가부터는 그것을 포기하고 들키지 않는 법을 연구했다.

엄지발가락 끝을 길게 늘리고 안으로 밀어 넣으면 꽤 감쪽같이 구멍을 가릴 수 있다. 걸을 때마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걷는 불편함을 빼면 꽤 버틸 수 있었다. 이 기억은 짓이기는 밥풀처럼 당시 창피한 기억이다. 어머니는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것이 가장 멍청한 일이라고 하셨다. 어린 초등학생이지만 왜 남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않았다. 그런 기억은 추억이자 교육이 됐다.

유학시절 유일하게 한 켤레 있던 신발이 있었다. 앞 부분부터 밑창이 떼어지기 시작했다. 중국마트에서 1불에 파는 접착제를 사서 대충 붙이고 살았다. 어느 날인가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산은 없었다. 비를 맞고 걸아가고 있는데 한쪽 발이 '훅'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느껴져야 하는 밑창이 아니라 꺼끌 꺼끌한 시멘트 바닥의 감촉이었다. 뒤를 돌아봤다. 내 또래 쯤 되어 보이는 이쁘장한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내 몇 걸음 뒤에는 이미 떨어져 버린 신발 밑창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신발 밑창을 들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 다음날이었나? 젖어 있는 신발에 본드를 수차례 붙였다. 붙지 않았다. 가장 친한 싱가포르 친구에게 말했다.

"신발을 사러 가야 하는데, 신발이 없어, 신발 좀 빌려줄래?"

20대 초반 가난한 유학생의 기억은 '신발'을 빌린 것 뿐만 아니라, 옆방 '일본인'에게 '치약'을 빌리려다가 거절 당한 기억, 이력서 뽑을 돈이 없어서 동전을 줍기 위해, 수 시간을 바닥을 쳐다보며 걸었던 기억, 지갑 대신 하얀 봉투를 갖고 다니고, 가방 대신에 검정 비닐봉지를 갖고 다니던 기억으로 가득찼다. 그렇게 찌질한 유학생활을 마치고 나니, 한국에서는 '유학'이라는 타이틀이 꽤 그럴싸하게 포장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찌질하며 실수를 해보는 방식으로 배웠다.

그게 교육이 됐을까. 어지간한 부끄러움은 덜 부끄럽다. 구멍난 양말은 친구에게 먼저 보여주며 웃으면 해결됐고, 신발과 치약 사건은 에세이로 출판하면서 알려 버렸다. 실수를 해보니 그것은 학습되더라. 오늘도 지금도 실수를 한다. 지금도 창피하긴 하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스스로 위안할 수 있다. 이 실수도 학습이겠거니...

어쩌겠나..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라디오에 출연하신 '강호동' 아저씨의 말을 가끔 떠올리며 위안 받는다.

'내는 내대로 가야겠다.'

그러고 보니 두번째 에세이의 제목은 참 잘지었다.

<촌스러워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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