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념과 철학은 사회와 개인을 어떻게 바꾸나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오인환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다짜고짜 소설은 핵심 주인공의 부고를 알린다. 노동절 새벽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죽는다. 소설은 장례식을 무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례는 3일간 치뤄진다. 그 기간동안 방문하는 인물과 사건을 만난다. 그것이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유물론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딸이 점차 아버지를 이해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다소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838년 스무살이 된 법학도 청년이 아버지의 사망을 맞이한다. 그 뒤로 그는 철학을 공부에 매진한다. '헤겔 철학'이다. 다만 그는 이후 헤겔 철학의 관념론과 비과학성을 비판한다. 이 비판 끝에 주장한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한 그의 이름은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다. 관념론은 무엇이고 유물론은 무엇일까. 그 전에 변증법에 대해서 부터 알아보자.



변증법은 'dialectic'이라고 부른다. 'dial-'은 대화, 'lect-'은 모으다 의 합성어다. '대화 모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마치 대화하듯 발전해 가는 논리 과정이다. 쉽게 말해, 한 이론이 등장하면, 반대 이론이 다시 등장하고 둘을 절충하는 합이론이 나오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과정이 반복하며 대화가 질적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변증법이다. 헤겔은 '관념론적 변증법'을 주장했다. 관념론이란 '실재'나 '물질'보다 '관념'과 '이론'이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헤겔은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가졌다고 봤다. 사회와 역사는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갈 것이라고 봤다. 정론, 반론, 합론 다시 정론, 반론, 합론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사회는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다르다. 마르크스는 '역사'와 '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관념'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봤다. 경제력과 생산력이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봤다. 고로 마르크스에게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사회, 경제적 환경'이 훨씬 중요했다. 결국 환경과 시스템이 '개개인의 의지나 관념'보다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유물론이다. 사회주의는 그렇게 개인의 자유와 신념보다 '배경'과 '환경'이 훨씬 중요하다는 배경에서 탄생했다. 고로 사회주의는 '유물론'에 배경을 두고 있다. 고로 '사회주의'는 '무신론'으로 이어진다. 신념, 믿음, 관념보다 '환경', '배경', '시스템'이 역사의 동력이라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영혼없는 상태의 영혼', '인민의 아편'이라고 봤다. 고로 자유주의는 개인의 신앙과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무신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고로 '인간'에게 '종교'는 중요치 않는다. 그들에게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젓가락이나 밥상과 같은 원자 집합 덩어리일 뿐이며, '영, 혼, 얼, 넋' 따위는 '관념'적인 것일 뿐이다.



흔히 '빨갱이', 혹은 '빨치산'이라고 부르는 용어는 파르티잔에서 시작했다. 파르티잔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가 어원이다. Parti-는 영어에서도 '부분' 혹은 '일부'을 말하는 말로 '당원, 동지, 당파'등을 부르는 말이다.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부품이다. 고로 거기에는 '위'나 '아래'도 없고 '우'와 '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을 원자 단위로 쪼개면 각각의 원자들이 집합일 뿐인 것 처럼, 사회주의는 구성원을 하나의 구성원으로 본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아버지의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사회주의자'의 시선을 벗어나 '관념적'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사회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물론적' 이었지만, 딸은 그런 아버지를 하나의 객체로 또는 그 개성을 더 깊게 바라보며 '관론적'인 시선을 갖는다. 소설의 대화체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다. 읽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없고 되려 글을 재미나게 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어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이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닮은 유물론적 시각'이 관념론적 시각으로 바뀌는 과정이 담겼다. 어쩌면 우리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 동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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