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회장이 사명을 '롯데'라고 지은 이유는 '괴테 작품'의 등장인물, 샤를롯데에서 비롯했다. 가장 좋아하는 그룹은 '롯데'다.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어쩌다보니 '롯데카드'만 쓰게 됐다. 롯데마트만 가고 롯데시네마와 롯데백화점, 롯데 제과, 롯데보험만 사용한다. 최초 롯데를 좋아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연히 롯데카드를 썼기 때문이다. 수입 창구를 여러 곳으로 열고 소비 창구를 한 곳으로 줄이다보니, 결국 롯데만 사용하게 됐다. 우연하게 시작한 '롯데카드' 때문에 대부분의 소비를 롯데에서 한다. 나중에 롯데가 계열사 몇 개를 매각하면서 일부는 롯데와 상관 없어졌지만 그래도 롯데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롯데 지주에서 출판한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라는 책은 신격호 회장의 회고록이다. 이것을 계기로 롯데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신격호 회장의 꿈이 기업가가 아니라 '문학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문학인으로 살기를 끊임없이 갈망했다. 결국 사명을 '롯데'라고 지을만큼 문학에 진심이었는데 그 철학이 내가 롯데 라는 그룹에 애장을 갖게 했다.
1921년 울산태생인 신격호 회장이 젊은 시절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누군가가 격하게 아끼는 작품이나 캐릭터, 음식, 장소를 알게 되면 그에 대한 호기심이 발생한다. 그는 어째서 그것을 좋아했을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신격호 회장'은 어째서 좋아했을까.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다. 책은 편지문으로 시작한다.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로 쓰여진 서겐체 소설이다. 이 글은 중반까지 베르테르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묘사된다. 베르테르는 '샤를롯데'라는 여인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는 그 묘사를 너무 순수하게 묘사했다. 롯데를 우연히 좋아한 것처럼, 소설 속 베르테르는 우연하게 '샤를롯데'를 알게 된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이 글이 점차 '비극'으로 치닫을 거라는 생각은 읽으면서도 전혀 들지 않는다. 그 묘사가 어찌나 스며들게 하는지 1749년 태어난 괴테, 1921년 출생한 신격호, 1987년에 태어난 나까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괴리없이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베르테르'는 진지하고 순수하다. 장면과 감정에 대한 묘사는 그 사랑이 '플라토닉'에 가깝다는 것을 암시한다. 단순히 이성으로의 매력이 아닌 자아와 상대의 희석이다. 이로 인한 다양한 감정이 힐끗보인다.
책은 중반부를 넘어서면 편집자가 편지와 지인들로 부터 얻은 정보를 엮어 재구성한다. 이후 소설은 3인칭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넘어간다. 괴테를 천재라고 부른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소설은 그가 겨우 스물 다섯의 나이에 쓴 책이다. 스물 다섯에 자신의 이야기와 지인의 이야기를 엮어 '베르테르'에 녹여 표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으니 감정 묘사가 거짓없고 솔직하다. 이 소설은 결국 '괴테'의 자전적 소설이며 그는 이 소설에서 거짓은 없다고 표현했을 만큼 그 묘사와 상황이 자신의 무언가를 포함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베르테르가 샤를롯데를 처음 만나는 장면은 돌이켜 본다. 가볍게 인연이 생기며 감정이 깊어 진다. 그 시점은 소설 중간 중간에 꾸준히 기억난다. 그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당시에는 중요한 순간이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이 중요한 페이지나 되는 것처럼 각인되는 순간 말이다. 샤를롯데가 아이들에게 방을 나눠 주는 모습은 그닥 길게 묘사되진 않았는다. 다만 소설 중반과 소설 후반, 소설이 끝난 뒤에도 어렴풋하게 떠오르며 아련하게 여운 남긴다.
개인적으로 결과를 알면서 보게 되는 이야기치고 소설 전개가 궁금한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이 경우에는 그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감정 묘사에 이끌려 전개된다.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에게 꾸준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물론 '빌헬름'의 편지는 여기서 소개되지 않는다. 독자가 '빌헬름'이 되어서 절실한 친구의 '고뇌'를 듣고 있는 모양새다. '빌헬름'은 '베르테르'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겨우 어느정도 조언이나 응원은 해 준다. 다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않는다. 절친한 친구 빌헬름은 철저히 관객의 시선으로 독자와 함께한다. 어쩌면 그도 독자다. 우리와 같이 '고뇌'와 '슬픔'을 문학적으로 즐기진 않았을까 잔인한 상상도 해본다. 오래된 노래 중, 리쌍의 '광대'라는 노래가 있다. 거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불 타는 20대의 청춘은 내일이면 사회의 첫줄을 이력서 쓰며 인생을 시험보고, 저 순진한 사랑의 초보. 애인 있는 남자와 눈맞어 사랑에 빠져, 슬픔을 기다리네.'
이 노래의 작사가는 래퍼 '개리'인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을 몹시 떠오르게 한다. 어쩌면 그도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이 노래의 가사 뒤에는 더 이를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너와 나 모두 왕의 옷을 입어도 신하가 되버리는 현실에, 혼신의 힘을 다해, 헌신해.'
노래는 관중이 광대를 바라보지만 결국 광대도 관중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의 광대가 되는 모양새를 묘사한다. 왕의 옷을 입어도 결국은 모두가 신하가 되어리는 역설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실, 한 젊은이의 슬픔을 지켜보지만 결국 자신도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역설을 맞는다. 따지고보면 베르테르가 사랑과 사회에서 겪었던 다양한 슬픔과 고민은 지금도 젊은이들 사이에 종종 있는 일이다. 베르테르는 의도치 않게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론을 짓고 만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꾸준하게 이어져 가야 한다.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만 사실 인생에서는 그 지점을 넘고 지나쳐야 더 쓸만한 서사가 나온다. 이 설과 삶이 다른 이유는 거기에 있다. 결국 삶은 비극으로 끝내선 안되고 끝나지 않을 것이다.이것이 결국 차이점일지 모른다.
300년 가까이 된 '괴테'의 사랑 이야기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이곳과 저곳에서 공감이 되는 이유는 이것이 결국은 변하지 않는 인간 공통적 고뇌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결국 우리를 닮았지만 결국 보자. 베르테르의 전신인 괴테는 그 뒤로도 60년을 더 살고 82살에나 사망했다. 소설은 소설이다. 삶은 더 진행해 볼수록 비극에서 멀어져 나간다. 고로 '베르테르 효과'는 잘못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