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뉴질랜드 출신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어떻게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발씩 걸어서 올라갔지요."
단번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발'이고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다음 한발'이다. 한번에 하나씩 이뤄가는 수 밖에 없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겠다는 야욕은 열 발을 한 번에 밟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얼마나 대단한 여정을 떠나던 얼마나 먼 여행을 떠나던 그것은 중요치 않다. 얼마나 대단한 결정을 하던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던 그것도 중요치 않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은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고, 그 다음을은 두 번째 걸음을 내딛는 행동일 뿐이다. 머릿속에 높은 목적과 험난한 여정에 겁을 먹을 필요없다.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저 지금 닥친 일을 하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발걸음을 떼는 일부터 시작한다. 성취는 작은 일의 연속에서 발생할 뿐이다. 커다란 무언가는 도착한 뒤의 해석일 뿐이다. 시작하고 연속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렇다. 산적해 있는 과중한 일들 중에서 쉽고 작은 일을 그 첫 번째 업무로 정하는 것이다. 노자가 했다는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말은 시작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시작의 중요성은 지금 닥친 단 하나의 행위에 집중하라는 말과 같다. '단 하나'라는 것이 핵심이다. '단 하나'는 시작을 하게 한다. 다시 그것은 지속하게 한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작은 성취를 쌓음으로써 결국 완성 단계로 나아간다.
리처드 도킨스는 완성된 구조물에는 '하향식 설계'와 '상향식 설계'가 있다고 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흰개미집은 얼핏 그 구조가 비슷하다. 결과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과정도 닮은 것은 아니다. 흰개미집은 '상향식 설계'다. 즉 각기 다른 개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분적으로 규칙이 만들어지며 완성되는 완성체다. 반면 사그라드 파밀라아 성당은 다르다. 파밀리아 성당은 설계자가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하향식 설계'다. 날아가는 철새를 보면 안다. 철새는 하늘을 무리지어 날아간다. 이때 특정한 모양을 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계산된 공중쇼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서로 일정한 각도라는 규칙을 따르며 비행할 뿐이다. 여기에는 설계자가 없다. 숲과 나무 중 다수는 '숲'이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누군가 설계자의 '설계'에 의해 숲이 이뤄졌다면 설계자는 상당히 복잡한 설계 과정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시작도 전에 지치게 만든다. 완벽한 설계 도면이 나오기까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천재가 아니라면 섣불리 시작하기 어렵다. 이런 수준의 천재가 되기 전에도 우리는 파밀리아 성당과 비슷한 모양의 구조물을 세우고 싶다. 철새처럼 그럴싸한 공중쇼도 해보고 싶다. 그런 경우 가장 완전하고 안전한 방법은 '상향식 설계'로 움직이는 것이다. 흰개미가 단순히 앞 개미의 행동에 맞게 다음 행동을 하고, 철새가 단순히 옆 새의 행동에 맞게 다음 행동을 하는 것처럼 무지한 첫 번째 발자국을 움직이며 그에 상응하는 다음 발자국을 움직이는 것이다. 매상황이 주어지는 순서에 대응하다보면 완벽하진 못해도 범인의 완성체를 가질 수 있다. 동시 다발적으로 움직여지는 '설계'는 꽤 그럴 싸 해보인다. 이런 '하향식 설계'는 다수가 공동의 목적으로 움직일 때나 가능하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전류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직렬연결'과 '병렬연결'을 배운다. 직렬연결은 전류가 흐르는 길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고, 병렬연결은 전류가 흐르는 길을 나눠 연결하는 것이다. 단순히 전지를 나란히 배열하느냐, 나눠 배열하느냐의 차이지만 같은 전지 두 개로 다른 효과가 난다. 직렬 연결한 전구는 전구의 빛을 더 밝게 빛나게 하지만 병렬 연결한 전구는 전지를 더 오래 쓸 수 있게 한다.
어떤 방식으로 전지를 연결하느냐는 무엇이 좋고 나쁘냐의 성질이 아니다. 전구의 빛을 더 밝게 할지, 전지를 더 오래 사용할지에 따라 결정할 뿐이다. 사람 여럿이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작업을 할 때는 병렬 작업이다. 반면 개인의 시간은 직렬로 연결되어 있다. 개인이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방법으로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직렬연결은 단순하다. 한번에 하나씩이다. 동시에 여럿을 진행하는 것은 공간을 쪼개 쓰는 경우나 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진화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가장 힘든 길을 가려면 한 번에 한 발씩만 내댇으면 된다. 단, 계속해서 발을 움직여야 한다.'
한 번에 하나씩, 단순한 논리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는다. 공부하며 음악을 듣거나, 산적한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을 시도한다. 그것은 능력처럼 보이지만 틀렸다. 멀티태스킹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망치는 일이다. 많이 갖는 것, 많이 하는 것을 대부분 '욕심'이라고 치부한다. 그러지 않다. 불가에 따르길, 욕심이란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상응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갖는 것을 말한다. 움직이지 않고 달성하거나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동시에 취하는 것을 말한다. 뜨거운 얼음, 차가운 불처럼 당최 상응할 수 없는 두가지를 동시에 취하는 것이 욕심이다. 손이 두 개라면, 둘을 취하고 셋을 갖고 싶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 자신의 그릇이 종지잔이라면 종지잔 만큼만 취하고 자신의 그릇이 호수와 같으면 그 모든 것을 취해도 욕심이 아니다. 결국 핵심은 이렇다.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모든 일은 다 중요하다. 개중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을 나눠야 한다. 모두 중요하다는 착각은 모든 중요한 일을 모두 덜 중요한 일로 만든다. 고로 더 중요한 일을 먼저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후 남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을 선택하여 그것에 집중한다. 결국 순서의 차이지, 언제나 행동은 남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만 취하여 집중하게 한다. 파레토의 법칙은 중력 법칙 만큼이나 현실적이다. 상위 20%가 전체 80%를 해낸다는 의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80%보다 상위 20%가 전체 결과의 80%를 좌우한다. 결국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20%만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다면 나머지 80%의 영향력은 덜 완성하더라도 20% 내외의 영향력을 끼칠 뿐이다. 미국의 작가 프래신 제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목표는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을 적게 만드는 것이다.'
효율은 더 많이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효율이란 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효율적으로 산다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법'이다. 현명하게 게을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에 모든 것을 처리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하나에 한 번씩 만 하자.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