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왜 대한민국에는 똥이 넘치지 않는가_혁신에 대

by 오인환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5000만명이 배설한다. 일인당 하루 200그램 정도를 배설하니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하여 보수적으로 100 그램으로 잡으면 1년 동안 대한민국에 쌓여야 하는 '똥'은 1825톤이나 되다. 물론 재미로 계산하니 정확한 숫자로 볼 수는 없다.

1년에 1800톤에 가까운 똥이 대한민국에 생겨난다. 그런데 어째서 대한민국은 똥냄새로 가득차지 않은 것일까. 오늘 하루 아침만 하다더라도 5톤의 똥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왔을텐데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원래 도시는 늘 냄새에 잠겨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하이힐과 파라솔이 똥 때문에 개발됐다. 창 밖으로 똥을 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니 유럽 여인들이 파라솔을 쓰고다니고 똥을 밟지 않도록 굽을 높이고 덧신을 입힌 것이 '하이힐'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문명 속 비문명을 역설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예시다. 다만 이런 사정은 조선이라고 다르지 않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는 '도성의 물이 짠 것은 사람들이 함부로 내다버리는 똥오줌 때문'이라고 했으며 다리 밑에는 인분이 덕지덕지 붙어서 장마가 아니면 씻겨지지도 않는다고 기록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것이 더 심해 보였다. 영국인 여행가인 새비지 랜도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여름에는 비 덕분에 오물이 씻겨져 지낼만하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어서 그나마 괜찮다.'

그는 봄철이 되면 얼었던 오물이 풀리며 냄새가 심해지자 차라리 자신의 코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기록했다.

갑신정변으로 알려진 김옥균은 외국인들이 조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길에 가득한 똥 오줌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똥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고종황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공중 변소를 만든다는 것이 쓸데 없는 돈낭비라고 여겼다. 고로 길가에 대변을 누지 말라는 칙령을 반포하였으나 따로 공중변소를 만들지는 않았다. 천지가 개벽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화는 멋들어진 첨단공학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멀지 않은 과거에도 사람들은 냄새 나는 낮은 기술의 하수도가 있는 주거 환경에 살았다. 대체로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혁신'이란 아주 사소하지만 대중적으로 스며든다.

모든 변기 밑에는 U자형으로 굽은 파이프가 있었다. 그전에는 바로 밑으로 내려가는 푸세식 변기었다. 어쨌던 이런 U자형 파이프는 굽은 부위에 물이 고이도록 함으로써 파이프를 통해 올라오는 냄새를 막았다. 아주 간단하고 원초적인 기술이지만 그것은 혁신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화장실은 1596년에 발명되어 리치먼드 궁중에 설치한 것으로 여러차례 시도됐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비쌌고 고장도 쉽게 났다. 혁신이 사람들에게 흡수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리함'과 '가격'이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여기서 선택을 받아야 혁신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시선은 고종이 생각했던 바와 다르지 않았다. '똥 싸는 공간'에 돈을 쓰기 아까운 것이다. 고장이 나기라도 하면 수리하는 것에 번거로움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U자 파이프가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술이 좋다고 무조건 선택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냥 요강을 밖으로 가져자가 버렸다. 그것이 훨씬 더 깨끗했고 더 편했으며 더 저렴했다. 그러던 중 '알렉산더 커밍'이라는 사람은 새로운 구조의 수세식 화장실 특허를 냈다. 이 화장실은 U자가 아닌 S자형 트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S자형도 문제가 있었다. 변기 아래쪽 S자 트랙의 레버를 써서 열어야 하고 또 닫아야 하는 것이다. 이 장치에서는 물이 새곤 했다. 알렉산더 커밍의 기술도 사람들에게 선택받지는 못했다. 얼마 뒤인 몇몇의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서로 상호 보완되고 개량됐다. 종국에는 슬라이드 밸브 대신에 경첩으로 연결된 플랩을 달고 물이 내려갈 때는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는 수세식 변기를 만들었다. 기술의 점층적인 발견에 조지프 브라마가 있었다. 그는 회사를 세우고 부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개량한 수세식 변기를 영업했다. 그 뒤로도 배관공 토머스 크래퍼는 발명을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트랩을 S에서 U로 구부려 개선하고 물통의 사이펀 장치와 물통이 넘치는 것을 막는 볼콕 장치를 개선했다. 변기의 구조가 점차 믿음직해지고 단순해지면서 가격 또한 저렴해졌다.

혁신이라면 대개 사람들은 남들이 얻지 못한 영감을 '번뜩'인 천재 한명을 떠올린다. 다만 그렇지 않다.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은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 벨은 1876년 2월 14일 12시에 미국 특허청에 전화기 특허를 시넝해다. 다만 같은 시기 비슷한 연구를 했던 이가 있다. 바로 '엘리샤 그레이'라는 인물이다. 엘리샤 그레이도 벨과 같은 날 특허 신청을 했으나 2시간 늦게 신청을 했다. 벨은 특허로 인해 아주 많은 소송에 직면한다. 전화와 관련된 특허 소송만 600건이 넘는다. 오랜 소송 끝에 미국 대법원이 벨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사람들의 뇌리에는 '벨'에 대한 이야기만 남았다. 특허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최초의 발명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에는 여러 논쟁이 있으나 그중 '안토니오 메우치'도 하나다. 2002년 6월에는 미국 의회에서 안토니오 메우치의 전화가 최초의 전화기라고 공식 인정했다. 1860년에 옆방에 있는 아내와 통화를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메우치는 임시 특허를 냈으나 특허 비용과 갱신 비용을 감단하지 못하고 끝내 권리를 포기했다.

발명과 혁신은 다르다. 혁신은 대체로 '사업의 성공'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최초인지 아닌지, 과학적 이론을 정립한 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대는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영감을 갖는다. 페이스북은 '마크 주커버그'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행태로 개발됐을 것이며 스마트폰 또한 스티브 잡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혁신은 한 사람의 천재성이 아니라, 대부분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주고 받아지며 개승되고 보안되며 만들어진다. 개중 사업에 성공한 이들은 다수에게 물건을 사도록 한다. 이로써 '혁신'은 단순히 '발명' 혹은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니며, 가격, 마케팅, 특허, 운 등 다양한 조건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번뜩이는 영감과 '유레카'하는 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회를 찾는 과정 중에 만들어지는 산물인 것이다.

20230525%EF%BC%BF122701.jpg?type=w580
20230525%EF%BC%BF122711.jpg?type=w580
20230525%EF%BC%BF122716.jpg?type=w580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발] 산적한 일 중 쉽고 작은 일을 첫 번째 업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