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살인마를 마주한 적이 있는가_내가 확실히 아는

by 오인환


단언컨데 두려워하는 어떤 것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것은 털어버리면 털려 나가는 먼지 같은 것이다. 두려움의 대상은 나를 건드릴 수 없다. 반대로 나는 고개를 힘껏 흔드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 그것은 성가신 파리처럼 썩은 육신과 영혼을 떠도는 존재일 뿐이다. 죽어 있는 사체에 꼬여 있는 똥파리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못한다. 단지 죽어 있는 것 곁에 붙어 있기에 그것이 곧 죽음이라는 '착각'에 빠질 뿐이다. 육신이 썩으면 똥파리가 여지없이 달라 붙지만, 정신력과 영혼이 썩고 부패하면 그 똥파리들은 역시나 달라 붙는다. 머릿속 이리 저리를 돌아다니며 그 썩은 냄새 곁을 돈다. 똥파리 입장에서 안타깝게도 영혼은 언제든 상쾌하게 재생할 수 있으며 이미 그것이 머릿속을 혼잡하게 떠돌고 있다면 단순히 손을 휘둘러 그것을 내쫒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범과 같은 맹수가 아니라 한낫 똥파리일 뿐이다.


시퍼런 칼날을 나에게 세우고 달려드는 살인마를 마주한 적 있는가. 나는 있다. 그는 시퍼란 칼끝을 나에게 향했고 달려 들었다. 그의 표정은 악랄했고 사악한 웃음을 하며 감정없이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공포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아차'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가 이 공포감을 극대화 시켜 줄 것이다. 살인마의 칼날 밑에 있는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냉장고로 걸어간다. 차갑게 식혀진 캔맥주를 꺼내들고 목구멍으로 꿀떡 꿀떡 넘겼다.


'아. 이게 휴일이지.'


나는 다시 살인마 앞으로 앉았다. 살인마의 칼끝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달려들 기세다.


'아차'


조금 전 사두었던 육포 하나를 꺼내 먹어야 겠다. 휴일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얼마나 고대했던가. 육포가 빠질 수 없다. 육포 포장지를 뜯고 캔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킨 뒤,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네깟놈이 살인마면 어쩔 것인가. 모니터 화면을 끄면 모습에서 사라지고 스피커 볼륨을 줄이면 '욕지꺼리'도 하지 못하는 것이.


기껏해봐야 내 휴일에 즐길거리다. 현실과 망상은 그렇다. 머릿속으로 쉴새없이 돌아가는 그 망상은 지금 당장 나를 덮쳐 올 것 같은 공포를 유발하지만, 내가 멈추면 멈춰지고 내가 끄면 사라지는 하찮은 것들이다. 현실의 나를 봐라. 그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휴일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현실을 살자'


닥쳐오는 고지서에 공포심을 느끼는가. 다가오는 시험날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가. 그것은 털어버리면 털려버리는 먼지조각보다 하찮은 것이다. 의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그 녀석을 털어버리자.


그러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시원한 맥주. 맛있는 육포. 안전한 보금자리. 심지어 지구인의 다수에게 제공되지 않다는 문화생활.



예전에는 악몽을 즐겼다. 악몽은 현실처럼 생생했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실제 포식자에게 쫒기는 감정을 줄 때도 있다. 잡히려는 그 순간, 벌떡 일어나 눈을 뜬다. 냉장고 문을 열고 찬기운에 서서 냉수 한 잔을 들이키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그렇다. '네깟놈이 어쩔껀데'


현실 똥파리 보다 못한 것들. 현실 똥파리는 나를 건들 수라도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걱정, 고민, 불안, 그것은 포호하고 날선 무엇을 들이밀지만 우습다. 여기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호흡을 해본다. 숨을 들여 마시고, 내뱉는다. 그 망상속 그것과 분리된 세계를 명확히 인식한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전류가 빛으로 바뀐 반도체 소자, 발광다이오드 네깟놈은 삼색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가만히 앉아서 울긋불긋 색이 변해가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포스러움이 나를 찾아오면 다시금 느낀다. 그것은 환영이다. 현실을 봐라. 얼마나 안전하고 포근한가. 차분한 음악을 틀어 들을 수 있고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실 수 있다. 아늑한 안락의자에 앉아 한숨을 잘수도 있다. 능동적인 행위를 취하고 '그놈'에게도 취할 수 있다. 나 스스로도, '그놈'에게도 주인은 나다. 내가 주체고 주인이다. 내가 마음 먹으면 언제든 무슨 일이든 취할 수 있다. 그것이 행복이다. 그것이 감사다. 감사할 것이 없다면 돌아가는 비디오 테이프를 일시 정지 누르고 현실로 돌아와, 성큼성큼 냉장고로 걸어가자. 거기에는 시원하고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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