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페달을 밟는 이유는 나아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자율이 높은 복리라고 해도, 거듭 제곱으로 올린 기간이 무수하게 많다고 해도 언젠가 0을 곱하면 그냥 0이다. 멈추거나 쉬면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닥치는 대로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게 명확한 답이라고 본다. 특별한 철학을 갖고 오랜 꿈을 달성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다수는 그냥 주어지는 일을 선택하는 연속을 행할 뿐이다. 업적이나 결과를 보고 과정을 모두 합리화하는 '사후확신편향'은 꽤 일반적이다. 가령 예를들면 이렇다. 히틀러는 유년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생명경시 성향인 '소시오패스' 기질을 담았다고 말한다. 이 역시 결과편향이다. 독립 운동가 '서재필'은 1896년 국내 최초의 민간 대중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다만 이미1894년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고국으로 돌아와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의 독립 투쟁은 조금 이상하다. 그의 독립신문은 1896년으로 1910년 8월 29일인 경술국치 이전이다. 무엇으로 부터의 독립일까. 독립신문은 조선 정부의 자금으로 창간됐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이 신문 매각을 시도했다. 독립신문의 '독립'이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청국과 일본이 시모노세키에서 1895년 '조약'을 맺는다. 특이하게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1조에는 난데없이 '조선'이 등장한다.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일본'의 필요에 의해 기술된다. '독립신문' 창간이 과연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일이었을까. 모르겠다.
매끼 식사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매순간 배가 고팠고 먹을 때가 됐고, 먹다보니 그럴 뿐이다. 대개 자기계발서와 역사서, 자서전은 결과 편향의 극치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망한 뒤에 찾아보니 그랬다는 식이고, 어떤 기업가가 성공한 이유는 철저한 계산과 용기, 노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이의 자기계발서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계발, 끊임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거기에는 인과관계와 상관관계가 분명 있겠지만 그것의 결정적인 역할은 아니다. 어릴 때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있었다.
'운칠기삼'
성패는 노력이 아니라 운과 기세에 있다는 것이다. 패배자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그것에 동의하게 됐다. 불타는 열정과 미래에 대한 꿈, 10년 혹은 20년 뒤에 대한 철저한 계획. 그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불타는 열정보다는 그저 지금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꿈 보다는 단기적 혹은 중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 계획은 내다 버려도 좋다. 국가 비전 설계 할 때나 필요한 5개년 계획은 개인에게 필요없다. 국가처럼 덩치가 큰 고래에게나 큰 흐름의 계획이 필요한 것이지. 개인과 같은 송사리에게는 단기적 선택이 훨씬 중요하다. 그것을 '기동력'이라 표현한다. 빠르게 대처하고 움직이는 것이 송사리에게는 더 중요하다. 그것은 최대한 빠른 결단력과 끊임없는 성실성이 필요하지, 장기적인 꿈과 계획은 개나 줘야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상당히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회장의 말이다. 흔히 실패를 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링컨'이 대표적이다. 위대한 인물로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의 삶을 살펴보면 그렇다.
그는 15세에 집을 잃고 길거리에서 쫒겨났으며, 23세의 나이에는 사업에 실패한다. 24세에는 주 의회 선거에서 낙선됐고 25세에는 사업이 파산했다. 이때 생긴 빛을 갚기 위해 17년 동안 애를 먹는다. 26세에는 사랑하던 약혼자가 사망하고 28세에는 신경쇠약으로 입원한다. 그 뒤로도 그는 공식적으로 27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링컨이 됐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약혼자가 사망하고 신경쇠약에 걸리고 사업은 파산하여 17년을 애먹는 삶에서 50년 뒤 미국 대통령이 되면 그 모든 것을 보상 받을 수 있을까.
흑인 인권을 위해 흑인을 해방했을 것 같은 링컨은 실제로 북부 사업가들의 이익을 대표하고 표심에 의해 움직이던 정치인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면 안된다. 맞다. 그러나 실패로 가득 채운 것도 그다지 부럽진 않다. 삶은 큰 흐름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류의 성격이 아니다. 가끔 필요하면 포기해야 한다. 다만 너무 원대하면 모든 걸 포기할 때도 있다. 뭐든 결과 편향적이고 말하기 나름이며, 쓰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해야 되는 것을 하는 거, 그 뿐이다. 오늘도 쓸말이 없다는 주제로 이렇게 썼다. 쌓여 있는 복리에 0이 아닌 1이라고 곱했고 달리진 않았지만 조심히 페달을 돌렸다. 이로써 넘어지지 않고 하루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