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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진통제만 찾던 심해어들이 저인망에 무더기로 걸

by 오인환

"대화한다는 것은 점점 더 공감에서 멀어진다는 뜻이었고 공감하기 위해선 말을 끝내야 할 때가 있었고 그런 끝은 점점 늘어만 갔다." -류성훈의 '글루코사민 중'


산에 오르면 산 전체가 위로를 줄 때도 있지만 작은 풀이나 나무가 위로를 줄 때가 있다. 무작위로 뻗어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이 아주 오묘하게 마음을 위로하게 되면 산이 아닌 '그것'을 위해 그곳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어떤 것이 나를 위로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뜯어보지 않은 포장 산물처럼 무엇이 나를 위로할지 알 수 없이 산행한다. 무언가로 위로 받으면 숨겨둔 보물을 당연하듯 찾아내고 내려온다. 그것이 마치 목적인 것 처럼.


때로는 규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규모가 담지 못한 것을 담아낼 때가 있다. 무엇을 찾아낼지 알지 못하면서 무엇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행할 때가 있다.

대체로 '시'는 그렇다.


시를 읽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누군가의 시가 적확하게 나에게 들어 맞을 때가 있다. 다만 그 적확은 아주 미묘한 감정의 선을 건드린다. 단연컨데 시인의 글은 그의 것이다. 그가 뱉어낸 글에는 시인의 철학과 생각이 담겼고 시인의 경험과 문체가 담긴다. 그러나 그것이 넘어오면 그것은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담겨와 바늘 끝 같은 감정의 쳠예함을 정확히 타격한다. 바늘 끝이 바늘 끝과 닿는 아주 극미세한 교감에 온몸이 전율이 흐를 때가 있다.


'대화한다는 것은 공감에서 멀어진다.'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도 하다. 세상 누구도 자신보다 더 자신다울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큼 해 본 적이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자신만큼 시간들여 들여다본 적 없다. 그것은 부모, 형제, 부부할 것 없고 친구, 연인은 말할 나위 없다.


말을 할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때로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달, 바다, 산에게 위로 받는다. 그것의 특장점이란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사람을 기르지 않는 시대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 반려동물을 길러 본 적 있는 이들의 수가 국민 과반을 넘는다. 말하는 동물의 양육이 인생에 패착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의 부모로 학습했다.


결국 그 하나의 바둑돌을 내려 두면서 판 전체가 어그러지는 오묘한 관경을 바라본 자녀세대의 현명한 선택은 '말하는 동물'을 키우지 않자는 것이 아닐까.

소통은 공감이 아니다. 소통은 그저 오고 가는 창구를 열어 놓는 일일 뿐이지 그것이 진청 하나의 감정으로 덩어리 지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오고 가는 소통의 창구로 인해 어떤 누군가들은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하기도 하고 어떤 누군가들은 색이 다른 이들의 감정으로 오염이나 물이 들기도 한다.


자전만 있고 공전 없는 춤들.

나아감 없이 제자리에서 근면하게 도는 것들에 대한 회의감. 그것은 과정이라는 이름에 언제나 따라다닌다. 현재의 위치를 확인 받고 싶기에 어디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근면해진다. 그것이 자신의 자리라고 착각한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공전하며 나아가 버린다.


고도로 성장하던 경제의 발전이 한풀이 꺾이고 그것이 다시 한풀이 꺾여, 전설적인 성공을 이뤄낸 어버이들에 대한 열등감.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낸 동년배들과의 경쟁심. 그것은 남녀를 불문해졌다.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든 뭐든 잡히는대로 물속에 처박아 한 모금의 숨을 뻐끔 거리듯, 대상은 자녀, 부모 심지어 사랑해야 할 이성까지다.

삭막한 경쟁사회가 생존본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사방에 적만 가득하다는 학습을 너무나 이른 나이에 우리는 해버린다.

어차피 알아야 할 것들임에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들은 결국 아주 똑똑한 선택을 한다. 몰라야 할 것은 몰라도 좋다.

7살 아이는 7살 수준의 알 것만 알아도 충분하고 스무살 청년은 스무살 수준의 알 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너무 빨리 성숙해진 세상이 서로서로 삭막해지게 하고 의미를 상실케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가만 보면 그것은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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