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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 소설이 왜 마음에 드냐면..._너는 어느

by 오인환

결핍을 채우는 욕구.

결핍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는 사람을 움직인다. '홍선기 작가'의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는 젊은 나이에 1조원 자산가가 된 사업가의 이야기다. 사업가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고 남들이 부러워 할 것들을 충족한 사람이다. 충만함이 흘러 넘칠 것 같은 인물. 그도 결핍을 느낀다. 외모, 경제력 어느 하나 빠질 것 같지 않은 이는 남들보다 더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충족된 부에 대한 욕구가 아닌 다른 결핍으로 움직인다. 결핍은 나쁘게는 '열등감'이 되고, 좋게는 '원동력'이 된다. 소설에는 죽고 싶은 이와 살고 싶은 이가 동시에 등장한다. 가장 삶을 충만하게 누리는 이는 죽고 싶어하고 소박한 일상을 사는 이는 살고 싶어 한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에 대해 다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다. 인간의 심리는 분명 고차원적이지만 기본적으로 결핍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갈증이 나면 물을 찾고 배고픔은 음식을 갈구하게 한다. 남성은 여성에 끌리고 여성도 남성에 끌린다.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나누면 갈증은 해소된다. 삶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핍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과 그것을 해소하려는 욕망. 그것이 해소된 후의 안정감. 그리고 공허함.

돈, 관계, 인생. 대부분의 것들은 그런 식으로 작동된다.

군시절 유격훈련은 지옥 같았다. 딱 5분만 바닥에 누워 있으면 살 것 같았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간절하던 5분은 지금 당장도 가질 수 있다. 충만함이 넘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핍보다 더 결핍한 상태가 된다. 대체로 결혼 전에는 뜨겁게 타오르던 연인관계가 후에는 싸늘하게 식는다. 프로듀서 박진영은 은행이자로만 먹고 살 수 있을 20억만 벌면 은퇴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하게 성장했고 그거 상장한 원동력은 20억을 달성 한 이후 부터 '돈'이 아니었다.

물질로 오는 행복감은 유통기간이 짧다. 그 설레임은 주문한 택배 물품이 전달되는 정도의 지속성을 가질 뿐이다. 사람은 끊임없는 목표 설정을 하거나 목표 설정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한다. 돈으로 움직이는 삶이 언제나 무가치한지 보여준다. 돈은 더 큰 성장으로 향하는 중 만나게 되는 아주 작은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홍선기 작가는 '소설가'이면서 사업가다.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롯데 '신격호' 회장이 떠오른다. 작가의 삶을 조금 살펴봤다. 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서가 있다. 그에게 주어진 별명은 '실패몬', '프로실패러'란다. 무조건 호감이다. 실패라고 한다면 나또한 할 말 많다. 개인적으로 '마윈'이라는 인물을 좋아한다. 마윈은 '성공'의 아이콘이지만 그 또한 삶의 흔적은 '실패'로 가득차 있다. 내가 마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거 성공했기 때문도 있지만 실패를 대하는 마인드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삶을 '포레스트 검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레스트 검프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저 묵묵하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간이라는 게 이분하기 좋아하기에 '성공'과 '실패'를 양분한다. 다만 성공과 실패는 양쪽 극단에 대치되어 있는게 아니다. 성공의 반대에는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다. 시작점과 성공 사이에 무수하게 이어진 점들이 있다. 그것이 '실패'다.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누군가는 '시작'의 출발점에도 서지 못한다. 흔히 가시광선 밖으로 존재하는 적외선과 자외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의 존재로, 존재와 무존재를 오가다 사라진다. 다만 성공은 분명하게도 가시광선 안쪽 스펙트럼에 존재하며 그 존재감을 아주 강렬하게 빛낸다. 빛나는 것은 '시작점'도 '끝점'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어느 부분에 주인공들끼리 묻는 질문과 답변에 나도 참여해 보았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대답을 내놨다. 그것에 대한 해서도 가지각색이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봄이면서 가을이거나, 겨울이면서 여름"

뉴질랜드에서 거주한 기간이 10년이다.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산타클로스를 10번 가까이 보다보니 12월이 가장 더운 달이라는 인식이 그닥 낯설지 않다. 나는 죽고 싶은 시간만큼, 장소도 한정하고 싶지 않다. 여름이면서 겨울이거나, 가을이면서 봄인 어느 장소인지 모르고, 어느 시기인지 모를 어떤 시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조금 열려졌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인 아니며, 누군가는 자고 있을 때, 일어나고 다시 누군가는 에어컨을 가동할 때 히터를 켠다. 모두가 일방향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깨달음은 해외에서 배운 마케팅, 경제, 영어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이다. 작가는 자신을 너무 많이 투영할 것 같다는 이유로 배경을 해외로 설정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본을 배경으로 했기에 소설의 몰입도는 더 높아졌다. 한국인이 소설에 등장하면 현실성 여부를 따지고 들게 된다. 적당한 이질감과 적당한 동질감을 주는 일본이라는 배경은 소설의 몰입도를 높였다.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떠올리게 한다. 서술방식과 전개 방식은 다르고 글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지만 꽤 흥미롭게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을 닮아 빠르게 읽었다.

편견 같은 것은 아니지만 책 좋아한다면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가 높아진다. 내가 '롯데'라는 그룹을 좋아하는 이유도 창업주의 꿈이 '문학도'였기 때문이다. '홍선기' 작가의 재능에 감탄이 나오는 매우 좋은 소설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도 다재다능 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데,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젊음과 삶에 대한 죄악이다. 당장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며 삶을 삶답게 가꾸어 가야 한다. 소설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을 닮아 나는 이 소설이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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