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해 본 적은 없다. 책으로, 그것도 오디오북으로 여행서적을 봤다. 제주도 지방도로를 운행하며 '유럽' 이야기를 들었다. 머릿속에 심어둔 다양한 사진과 영상이 보조되며 이색적으로 들렸다. 본 도서는 지도나 사진이 많은 책으로 알고 있다. 다만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그것들은 확인 할 수 없었다. 윌라 오디오북에서는 아주 짧게 유시민 작가가 도서 서문을 읽는다.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역시 오디오북의 매력이다. 기행문이라 많은 사진이 있을 책이다. 다만 유시민 작가가 찍은 사진을 보진 못했다.
정치를 떠나 '작가'로 삶을 살고 있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다. 정치인 시절에는 날선 표정을 하고 있던 정치인이었다. '작가'로 전향한 뒤부터 그의 인상은 매우 달라졌다.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의 인상이 변하는 것을 보며, '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다.
유튜브에서 여행을 다니는 컨텐츠를 찾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행책을 선택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책이 갖고 있는 특장점 때문일 것이다. 책은 즉흥적이지 않다. 책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을 거듭 반복한다. 그렇게 정제된 글과 생각은 '유튜브' 보다 생생함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풍성함은 더하다. 여행을 다니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문화와 역사, 인문학적 배경 지식까지 섞어 듣는 것은 여행서적의 매력이다.
유시민 작가의 책은 국가가 아니라, '도시'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프랑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가 아니라 왜 '로마, 아테네, 이스탄불, 파리'였을까. 아마 그것은 유럽 역사의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체로 5000년 간 크고 작은 변화는 있지만 반도 내에서 같은 민족이 뿌리를 박고 살았던 우리는 유럽인과 다른 역사관을 가졌다. 우리에게 서울은 언제나 우리가 살던 지역이었지만, 이스탄불의 경우, '터키의 역사'로 한정하기에 그릇이 크다. 로마 또한 '이탈리아의 역사'로 한정하기에 그 그릇이 너무나 크다. 대체로 도시들은 다양한 민족이 흔적을 남겼고 다양한 언어와 인종, 문화가 흘러지나간 자리다. 비교적 현대에 건국된 국가에 그 도시를 담아내기 역부족이다. 유럽은 고로 국가보다 도시가 깊이 있다.
꼬리를 올리고 흔들며 강아지는 반가운 감정을 표현하지만 같은 표현 방법이 고양이에게는 긴장과 불안이다. 결국 같은 것을 보고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니, 고양이와 개가 앙숙이 되는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역사관이 다른 것은 유럽만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도 역사관의 차이는 크다. 중국은 영토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보는 관점이다. 반대로 우리는 '민족'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그러니 중국과 한국 사이 역사적 문제가 갈등이 되곤 한다. 고구려나 고조선의 경우, 중국의 역사관에서 중국의 역사지만 우리의 역사관에서는 우리의 역사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북미에 있던 루이지에나를 미국에 매각한 것은 1803년이다. 그렇다면 그 지역은 언제부터가 미국의 역사고 어디까지가 프랑스의 역사일까. 알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관념적 차이일 뿐이다. 뉴욕의 맨하튼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만든 식민 도시다. 두부 자르 듯 정확하게 잘라 구분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역사는 때로 갈등이 되기도 한다. 유럽 도시는 그간 어느 한 국가에 속하여 오랜 기간 머물지 않았다. 고로 유럽 여행을 현대 국가 중심으로 보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다.
그의 기행문에서 절묘한 표현이 떠올랐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 관한 내용이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유적들이 있지만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강제 동원된 노동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민주적이며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건축된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단연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각자 잘 분업화 된 기술자, 노동자, 행정가들이 평화스럽고 문명화된 방식으로 축조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에펠탑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을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면 거기에는 그저 150년 된 철제물이 있을 뿐이다. 그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조금 떨어져 봐야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이 파리의 풍경을 해친다며 건설을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에펠탑이 세워진 이후에 그가 에펠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답했다.
"여기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볼 수 없는 유일한 곳이니까."
따지고보자면 어떤 것을 보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하는 것도 정답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우리 속담으로 '등장 밑이 어둡다'라고 한다. 따지고보면 유럽여행을 소망하면서 가장 가까운 곳조차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장소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가져야 삶이 풍성해지는지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