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리] 우울증은 교통사고보다 위험하다

사실 우리는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by 오인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먼저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집안을 안정 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

예전 미국의 한 해군 장교의 연설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해군장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이불 정리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흔히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너무 상투적이지만 정말 그렇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편견'일 수도 있다. 다만, 조금 더 깊게 말해보자면 '빅데이터'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미래를 성급하게 예단하는 것과 다르다. 사과씨를 보고 그것에서 사과나무가 자라고 사과가 열리겠다고 연상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씨앗에서 무엇이 열릴지는 씨앗부터 알 수가 있다. 이제 '천하를 평정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수양한다'는 의미가 바로 잡힌다.

모든 것은 '잉태'되면 방향성을 가지고 성장한다. 흑인으로 태어나서 백인이 되거나,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의지력과 성실함이면 뭐든 달성할 수 있다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은 씨앗과 방향성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기본'이다. 기본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씨앗은 '건강'이다. 몸과 정신 이 둘은 둘 다 중요하다.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 만큼 혹은 그것보다 정신건강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가. 이유는 이렇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이 벌겋게 충열되어 있거나 피가 철철 흐르면 주변인과 스스로가 위험 증상임을 인지한다. 그것은 즉각적인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 너무 마른 사람에게 주변은 마른 편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사진이나 거울을 통해서 꾸준하게 주변인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도 모르게 체크할 수 있다. 다만 정신은 어떤가. 정신은 그렇지 않다. 정신은 주변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심지어 스스로도 가장 알지 못하는 영역이다. 누군가와 비교하여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신체와 달리, 정신은 비교하는 자체가 건강을 해친다. 고로 정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은 신체를 단련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정신은 어떻게 삶에 영향을 주는가. 한국인 사망원인 중 5위에 속하는 '자살'은 질병이 아니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한 증상이다. 이 자살이라는 증상은 '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에서 나온다. 정신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여기서 알 수 있다. 어려서 부터 부모는 '차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운수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자살사망자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차조심 해라' 보다 자녀를 원한다면 '행복해라'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취업을 하는 것 보다, 학업 성적이 우월한 것 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살아 있는 일이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최소 대한민국 국민의 사망원인 중 가장 위험한 병 정도는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이 병에 취약한가. 그것은 우리 사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경제학에서 밴드웨건 효과가 있다. 밴드웨건효과는 편승효과라고도 부르는데,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 효과의 최전선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유행'이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비슷한 유형의 옷을 입는다. 남들이 다 하는 어떤 것 쯤을 기본적으로 따라한다. 미용실에 가면 헤어스타일이 몇 가지 정해져 있다는데, 남과 북은 그런 의미에서 비슷해 보인다. 한때, '고기뷔페'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유행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마치 짜기라도 했듯 그것에 몰려가 수요를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이 수요를 충족할 공급이 우후죽순으로 생긴다. 그러다 다시 어떤 것이 유행하면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쪽으로 수요가 몰린다. 그러니 남들이 다하는 것 쯤은 당연히 하고 있어야 하고 그 흐름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도태됐다는 착각에 빠진다. 원래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있던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SNS가 발달함에 따라 더 극적으로 변했다. 이렇게 타인의 행동양식을 기민하게 바라보는 긴장된 심리 상태는 쉽게 지친다.

그런 상황에 쳐해져 있다는 위험 의식을 지금 가졌다고 해도 괜찮다. 원래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 조차 모를 때'다. 벌써 위기 의식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모르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의학적으로나 정신의학적으로나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을 '병식'이라고 한다. 병식은 조현병 치료나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중증 환자는 자신이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주변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중증으로 나아간다. 위험상황을 인지하고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드라마 '스위트 홈'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진다."

그렇다. 일단 병식으로 자신이 질병에 노출됐다는 상황을 깨달았다는 것은 아주 어두운 방에 작은 촛불 하나를 켠 것이다. 예전 유행하던 노래 가사처럼 작은 촛불은 다른 초를 찾고 두 개, 세 개로 키워나간다. 자각을 하게 된 병에 다른 초와 다음 초들은 현대 의학적인 상담과 약물 치료도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 병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비비안 그린은 인생에 대한 아주 기가 막힌 명언을 했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작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 빗방울에 마음을 조리며 걸어갔다. 혹시나 흙탕물을 밟은면 어쩔까. 혹시라도 비에 젖게 되면 어쩔까. 마음을 졸였다. 중간 중간 건물에서 비를 피하며 생각해봤다.

'어찌됐건 이런 방식으로 비를 피해도 집에 도착할 쯤에는 완전 젖어 있겠구나.'

어차피 젖어버린 신발.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다른 친구들을 두고 물 웅덩이를 힘차게 밟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집에 돌아왔을 때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되려 천둥 번개가 쳤다.

'신발이 젖는 걸 두려워 했다면 나는 천둥번개'라는 더 큰 위기를 만날 뻔 했구나.'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시면서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을 다른 우주에 있을 또 다른 나'를 생각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뭐든 즐기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가장 즐겁게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IMG_3803.jpg?type=w580
IMG_3804.jpg?type=w580
IMG_3805.jp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문]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_유럽도시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