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내려가는 길에 '남조로'라는 도로가 있다. '남조로'는 서귀포시 '남원'과 제주시 '조천'을 잇는 도로다. 조천에서 이 도로를 타고 남원 방면으로 진입하자마자 밤이되면 볼 수 밖에 없는 테마파크가 하나 보인다. 그것이 얼마나 찬란한지 아이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이것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매번 '다음'에를 이야기하다 이번에 다시 재방문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실물 크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체로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캐릭터들이 훨씬 더 많다. 폭우주의보가 내린 날이라 조금만 있다가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진입로로 들어가면 실물크기의 건담 로봇들이 즐비해 있다. 이 사이를 구경하다 들어가면 체험관이 나온다. 아이들은 건담 로봇들을 구경하러 나갔고 그 사이 체험관에 있는 그림과 작품들을 감상했다. 조용히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이 어떤 나이가 지나서야만 가질 수 있는 감성인 듯하다. 예전의 나라면 스치고 지날 듯한 공간에 머물러 한참을 있었다.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심오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것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만의 것이 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미술품들에 대해 공감이 간다. 사실 음악을 듣거나 미술을 볼 때, 예전에는 몰랐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모른다면 그저 배경일 뿐인 것들이 책과 이야기로 대략의 흐름을 알게 되니, 흥미로운 예술 작품이 되는 듯 하다.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거의가 아니라 그 시간대에는 우리가 유일했다. 전등에 스치는 전류 흘러가는 소리가 적막함을 채웠다. 적당한 적막과 적당히 밝은 빛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여 준 적은 없다. 아이들은 스파이더맨을 좋아했다. 어린시절 나에게 스파이더맨은 이해할 수 없는 영웅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히어로는 '베트맨'이었는데 이유는 베트맨은 그럴싸한 망토를 착용하고 멋진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 그를 상징하는 검정은 꼭 수트를 입은 것 처럼 보였다. 비슷한 시기, '스파이더맨'을 알게 됐다. 스파이더맨은 보기 흉하게 다리를 벌리고 있고 흔히 말하는 '쫄쫄이' 레깅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색깔도 빨강과 파랑이 지나치게 튄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서 보건데 스파이더맨의 의복은 적응이 되서 지금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 1편을 보고 그 이후로 거의 보지 않았다. 스파이더맨과 같은 영웅은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최근 '다크나이트'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에 대해 여러 부분 생각하게 만든다. 법 보다 우선하는 정의가 과연 정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법은 가끔 정의롭지 못한 이들을 변호하거나 보호하기도 한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법 보다 위에서 약자를 돕는 모습으로 사람들은 히어로를 응원한다. 다만 만약 세상에 실제 그런 '히어로'가 나온다면 마냥 응원할 수 많은 없다. 최근 논란이 되는 '사적제재'다.
2년 정도 전에 아이들과 이곳을 방문한 적 있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기억했다. 그네가 어디에 있으며 미끄럼틀이 어디에 있는지 상세하게 기억하는 아이들을 보고 신기하다고 여겼다.
이날은 꽤 날이 더웠다. 공간의 일부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다. 물론 이곳은 해가 지고 난 뒤에 가야 하는 곳이다. 다양한 조명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일찍 갔던 탓도 있다.
아이가 올라타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었다. 2년 전에는 그러지 못하도록 했다.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건들지 못하게 했는데 다시 보니 건들지 말라는 말도 없고 아이들이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위치가 된 것 같아서 아이를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빛이 아름답다. 아이와 이곳에서 더 있지 못한 것은 더운 기온 때문이었는데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다시 갈만 한 곳이다.
사진들은 아이들이 먼저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왜 오지 않았나 싶었다.
꼭 아이들끼리가 아니라 연인들끼리 오기도 좋은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며 느낀 점이 있는데 정말 아이들은 빨리 큰다. 어른들이 어렸을 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이가 빨리 큰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아이가 크는 것을 보면 내가 빨리 늙는다는 것인데, 아이는 빨리 크는데 내가 늙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거울을 볼 여유 없이 살고 있어, 아침에 샤워 전 욕실에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나라고 인정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모습은 20대 초반의 외형인데, 지금 잠시 정신이 없어 지금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장난은 일부러 틀리는 장난이다.
하율이가 '나비' 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나비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 코끼리?"
그럼 하율이는 나비라고 말한다. 나는 그러면 그것을 '저거 코끼리야'라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놀이가 아닌 그 놀이를 한참을 하고 있으면 하율이가 짜증을 '팍'하고 낸다. 그러면 나는 웃음이 터지고 놀이는 끝난다.
아이를 키우며 뿌듯할 때도 많지만 벅차는 순간도 있다. 내가 맞게 하고 있나. 하는 순간도 있다.
류승환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마당에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냐,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하지."
영화는 10년도 전에 만들어졌지만 10년 후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이 미당에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잘하고 있다고 믿는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