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드의 'The Holy Family'라는 그림은 책을 든 엄마가 아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모습은 너무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다. 다만 그 앳된 엄마가 '마리아'라고 알고 보면 다르다. 흔히 성숙한 모습으로 기억하는 '마리아'가 앳된 소녀 엄마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오른손는 '구약'으로 보여 지는 책이 들려 있다. 아이를 비추는 빛은 그 위치가 다르다. '벽난로'가 있는 측면이 아니다. '상향'이다. 앳된 마리아와 어린 예수의 모습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을 이 그림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의도가 있다. 빛 통해 평범하지만 비범하게 보여지는 효과다.
이탈리아 초기 화가, 카라바조 역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그림을 표현한다. 그의 그림만큼 자신도 빛과 그림자가 분명한 이름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뒷골목을 전전한 사람이다. 또한 신학적으로 해석했을 때 깊은 의미가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므로써 스스로도 빛과 그림자의 극명함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다. 카라바조의 그림 중 'The taking of Christ'라는 작품은 어둠 속에서 예수의 얼굴에 빛이 드리워져 있다. 다만 그의 표정은 역시 어둡다. 예수 그리도가 잡혀가는 상황을 묘사한 이 그림은 매우 역동적으로 보이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고작해봐야 여섯이 전부다.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인물 한명 한명이 강한 서사를 드러낸다. 예수를 잡으러 온 병사들은 과도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번쩍 거리는 갑옷을 착용하여 사납게 덤빈다.
대체로 예수를 표현하는 그림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빛'이다. 이 빛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어둠이다. 고로 예수와 마리아의 그림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
일본에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타다오는 오사카, 아바라키 가스가오카 교회를 직접 설계했다. 이 교회는 평범한 주택가 안에 있는 교회지만 그 애칭은 '빛의 교회'다. 그는 교회를 콘크리트로 지었는데, 예배당 제단 뒷편에 쉽자겨 형상으로 창을 만들어 밖에서 빛이 세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이 교회는 주변이 어두워 그 빛이 선명하게 보여질 뿐 만아니라 아름답기까지하다. 반면 교회의 외부로 가게되면 정확히 그 빛은 반전된다. 밝은 주변에 비해 검은 십자가가 나있다. 고로 밝음은 어둠을 낳고, 어둠은 밝음을 낳는다. 성경 구약에 따르면 창세기 1장 3절는 다음과 같다.
"빛이 있으라 하여 빛이 있었다."
얼핏 창조주는 빛을 가장 먼저 창조했을 것 같지만, 빛이 생기기 위해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어둠'이다. 고로 어둠은 '빛'에 선행한다. 또한 빛은 어둠이 있기에 존재 할 수 있다. 세상을 모두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창세기에 따르면 빛과 어둠은 극명하게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또한 둘이 맞닿아 있고 서로가 서로를 낳는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와 모네가 빛의 화가라고 불려지는 이유는 이 빛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밝음과 어둠은 단순히 빛과 그림자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빛의 방향과 표정 상황, 분위기, 색체 등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빛과 어둠을 표현한다.
사람에 따라 그림을 보는 행위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예술 작품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료일 수도 있다. 다시 누군가에게는 기법과 기술일 수도 있다. 다만 '장요세파' 수녀에게 그림은 기도와 닮았다. 기도라는 것은 특별히 어떤 동작에만 이름을 붙이는 성격의것이 아니다. 삶의 모든 것과 세상의 모든 것에서 신의 숨결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는 종교에 다르지 않다. 단순히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구도자의 길에 대해 묵상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단순히 눈을 감고 손을 모으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림은 분명 불투명 하지만 분명 관통하여 무언가를 또렷하게 보게하는 '창'과 닮았다. 단순히 여러 색깔의 집합체가 아니라 거기에는 인문학적 정보와 신학적 정보가 함께 담겨져 있다. 이런 인류학적인 압축파일은 풀어내는 이가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중세 유럽에서 종교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을 해석하는 이가 종교인이라는 것은 그 시대적 배경과 생각해 봤을 때 굉장한 매력이 있다. 우리는 글이라는 것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둔다. 그러나 원래 인간이 최초에 남긴 정보는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인간이 당시 남겼던 정보가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쩌면 다행일지 모른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직선적인 정보가 아닌 공간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고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 폭넓게 추측하게 됐다. 이것이 아마 우리의 인지 발달에 직선 정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