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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혁신은 야만에서 출발한다_강제혁신

by 오인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불리는 '재상'은 원래 음식을 요리하는 자다. 본래 노예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었으나 진나라 이후로 '최고 행정관'을 의미하게 됐다. 주인의 지위가 오르면 노예의 지위도 오른다. 혁신과 개혁은 개인의 권력을 향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주변과 사회를 부흥시킨다. 구글과 애플, 메타의 혁신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미국의 성장을 이끌었다. 미국 젊은이들이 만든 이 회사들은 혁신으로 시작했다. 혁신은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한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사회의 가르침은 때로 정답이 아니다. 때로는 불만족하고 불평하고 불편해 하는 이들이 혁신을 만들어낸다. 꾸준하게 주지만 혁신은 '불만족'에서 시작한다. 혁신은 난세에 난다. 태평성대 시절에는 모두 불만이 없다. 만족함이 가득한 시기에는 혁신은 불필요한 행위일 뿐이다. 명나라 후기는 말 그대로 태평성대였다. 큰 전쟁이 없고 국가는 부유했다. 이때 중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중국 축제에서 크게 놀랐다. 유럽에서 1년 전쟁 물자로 쓸 화약이 하룻밤 불꽃놀이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면 태평성대한 시기가 있다. 중국 명나라 시기와 반도의 조선이 그렇다. 두 국가는 큰 전쟁 없이 수백 년을 보냈다. 이런 태평성대 기간은 혁신의 적이다. 아이러니하게 두 국가는 비슷한 시기에 큰 전쟁에 휘말린다. 한 쪽은 국가가 멸했고 다른 한 쪽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더이상 나아질 필요가 없는 상태에는 누구도 나아지려 하지 않는다.

"Too good to be the best (최고가 되기에는 너무 좋은 상태)"

적당한 불만이 해소되는 괜찮은 상태는 사람을 태만하게 한다. 자산가들은 월급여를 달콤한 마약과 같다고 말한다. 더 나아갈 필요를 못 느낄 정도의 충분함이 느껴지는 행복감이다. 그 정체감은 장기적으로 존망을 결정하는 위협이 되기도 한다.

같은 시기 일본과 여진은 내부 전쟁을 겪고 있었다. 시끄러운 내부는 결핍이었고 결핍은 에너지로 쌓인다. 에너지에는 좋은 에너지와 나쁜 에너지가 있다. 결핍, 불안, 증오와 같은 나쁜 에너지도 에너지다. 그 힘이 같는 파급력은 같다. 음과 양의 차이일 뿐 힘은 같다. 결국 전쟁과 결핍으로 쌓인 에너지도 동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일본과 여진은 내부의 불만이 외부로 바꿨다. 그것은 혁신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도 그랬다. 유럽은 전쟁과 가난, 전염병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은 기존 시스템에 불만을 갖게 했다. 관습과 풍속, 방식을 모조리 갈아 엎어야겠다는 의지는 에너지로 충분히 쌓였다. 그것은 혁신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일본 열도는 내전 끝에 전국통일을 한다. 이후 평화의 시기가 찾아왔고 일본도 명과 조선처럼 화약 무기에 대한 혁신이 후퇴하기 시작한다. 위기감이 사라지면 의욕은 사라진 것이다. 오랜 평화가 시작 후 일본 막부는 화약 무기의 필요성이 느끼지 못했다. 일본의 혁신도 예전만 못하게 된 것이다. 평화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시사경제용어 중에는 '메기효과'라고 있다. 운송 과정에서 자꾸 죽어버리는 미꾸라지를 살리기 위한 방식에서 시작했다. 메기는 미꾸라지의 천적으로 미꾸라지가 있는 수족관에 메기를 풀면 개체수가 줄어 들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꾸라지가 있는 수족관에 메기를 풀어놨더니 미꾸라지의 생존력이 높아진 것이다. 적절한 위기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혁신의 탄생과 닮았다. 동아시아가 평화로운 시기 유럽은 끊임없는 전쟁 중에 있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싸웠고 프랑스는 모두를 상대로 싸웠다. 유럽인들은 무기를 개발하고 연마했다. 1800년대가 되면서 동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뒤쳐지기 시작했다.

전투력을 상실한 평화가 가져다 준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17세기 이후 군사혁신은 동아시아에서 사라졌다. 대항해시대를 말하는 15~17세기는 유럽의 전유물로만 알려졌다. 다만 비슷한 시기 명나라에서도 대항해시대는 열릴 뻔했다. 명나라 황실의 환관 출신이던 '정화'라는 인물이 해양사절단을 꾸린 뒤 바다로 나갔기 때문이다. 이때 정화가 타고 나간 기함의 크기는 길이가 최소 55미터에서 최대 75미터에 이르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다며 타고나간 산타마리아호가 18미터인데 반하면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해양사절단은 62척의 배를 갖고 있었고 2만 7800명이 항해를 했다. 다만 청나라의 배는 동남아시아와 수마트라 섬에서 잠시 머물다고 인도 정도를 방문하는 것으로 그쳤다. 반대로 국토 대부분이 땅으로 이루어져 있고 토지가 척박했던 유럽의 소국인 포르투칼은 스페인이라는 대국에 가로막혀 빈곤한 국가로 머물러 있었다. 이 포르투칼은 자신들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갈구 했고 엄청난 무역흑자를 이루고 신대륙을 선점하는 등의 횡보를 한다. 이 두 차이는 앞서 말한 '최고가 되기 너무 좋은 상태' 때문이다. 혁신은 이미 좋은 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혁신은 멋진 비즈니스맨의 깔끔한 옷차림과 프리젠테이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련되거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시작하지도 않는다. 되려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빈약하고 불편함으로 시작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한다.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는 첫 번째 GUI를 개발했다. GUI란 Dos와 같이 불친절한 운영체제가 아니라 그래픽을 통해 쉽게 정보를 확인하는 작업환경이다. 이것을 제록스로부터 가지고와 만든 것이 맥OS의 시작이다. 고로 혁신은 날것이며 야성적이고 때로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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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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