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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혼란이 지난 뒤의 여광_기억의빛

by 오인환

세계 2차대전 직후 14세 너세니얼은 두 살 누나와 싱가포르로 간다. 부모는 그들을 범죄자 비슷한 두 남자에게 맡기고 떠난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소설은 그렇게 시작한다. 부모는 왜 그들을 맡겨야 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전혀 언급도 없다. 아이를 싱가포르로 불쑥 던지고 떠난 부모의 행동처럼 소설은 느닺없이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소설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고 기대하고 읽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포탄이 쏟아지고 총알이 오가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에 관한 기억은 스펙타클하거나 긴박감이 넘치기보다 낯선 사람과 세계에 대한 경험과 기억들이다. 남매는 나방과 화살이라는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속하여 다양한 경험을 한다. 개 밀수 사업을 하거나 템스강을 누비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아이들은 특별한 배경에서 독특한 경험을 쌓는다. 글은 조용히 다가와 가슴으로 적시어진다. 그것이 마치 나의 오랜 기억처럼 말이다. 남매에게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일들이 벌어진다. 강렬한 첫 문장처럼 강렬한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범죄자 같은'이라는 형용사 때문에 소설 한참을 보호자를 의심한다. 그것이 아마 소설 속 주인공들이 보호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10대들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한다. 개중 한 사건을 맞이한다. 남매가 납치 당할 뻔한 것이다. 이후 남매는 이 사건으로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성인이 된 이후 정보국 기록보관소에서 일하면서 지난 흔적을 찾아 나선다. 거기에는 전쟁과 관련한 서류가 많았다.그중 일부는 분류되고 폐기됐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기록에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엿보게 된다. 전쟁 이후 비밀스럽게 활동해야 했던 요원들에 대한 이야기. 개인사를 넘어선 역사에서의 개인이 흔적으로 남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운은 남는다.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은 시간이 지나며 이해된다. 납득않는 경험도 차츰 지나며 이해된다. 그것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감을 못한다. 경험한 뒤에야 결국 이해한다.

이해 없는 전쟁은 잔혹하다. 비밀 요원들은 비밀스럽기에 인간다움이 없다. 다만 인간이 행한 모든 일에는 인간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회사 일정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의 심정과 이곳 저곳에 맡겨지는 어린 시절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어린시절 부모님은 농사를 지셨다. 농사일이 바쁜 철에 나와 동생은 항상 사촌네 맡겨졌다. 외가 쪽으로, 친가 쪽으로 번갈아가며 맡겨지던 어린 시절 추억이 소설과 중복된다. 전쟁을 수행하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비인간적이다. 다만 인간의 일이다. 이 소설은 추리물도 아니고 액션물도 아니다.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지도 않는다. 로맨스도 아니고 스릴러는 더 더욱 아니다. 소설은 다양한 기억이 혼재되어 있다. 차근 차근 과거의 회상을 떠올릴 뿐이다. 그것이 제목인 '기억'에 적합한 이유다.

소설의 제목 '워라이트(Warlight)'는 무슨 뜻일까. 이는 전쟁으로 만들어진 빛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폭탄이나 총탄에서 나오는 빛이다. 이런 전쟁이 만든 '빛'. 그것은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만은 않다. 워라이트에는 또다른 뜻이 있다. 바로 투지를 보여주는 눈빛, 전쟁으로 사라진 빛을 안내하는 빛이다. 중의적 의미를 제목은 가진다. 사라진 빛를 보조하며 희미하게 그것을 안내하는 빛. 동시에 반짝 거리는 눈빛이며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흔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전쟁을 일상과 철저하게 분리된 현상으로 여긴다. 다만 전쟁은 일상과 분리할 수 없다. 일상과 혼재되어 있다. 특수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이어 나간다. 소설은 지나간 일상에 대한 기억과 흔적이며 그것의 배경이 희미하게 전쟁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사람과 기억에 대한 오묘한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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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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