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에 따른 인간의 수명은 38살.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마흔이 되면 두 번째 삶은 시작한다. 인위적인 삶이다. 보너스의 시간. 당연한 것은 없다. 보너스 시간에는 불평불만이 옳지 않다.
자연계에 '노년'이라는 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려동물과 인간만이 노년이라는 시간을 가진다. 사회나 보호자가 생을 연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고로 두 번째 삶은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겨우 내린 결론은 '긍정, 감사, 균형'
그것이 전부다. 더 이상 없다.
헨리포드의 말이 떠오른다.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당신의 믿음은 옳다.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을 할 수 없을 것이고, 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바꿔 말해도 그렇다.
'당신이 행복하다고 믿든, 불행하다고 믿든 당신의 믿음은 옳다.'
불행하다고 믿으면 불행하고, 행복하다고 믿으면 행복하다.
믿는대로 산다. 사는대로 믿게 된다.
최근 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졌다. 먹는 시간도 불규칙하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 이어졌다. 마음의 여유가 줄어 들었다. 운전 속도가 붙어 주변 시선이 좁아지는 것과 같다. 응시하는 목적지만 바늘 구멍처럼 좁아졌다.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이 바늘 구멍 으로 빨려 들어 갔다.
어쩐지 그것은 시공간을 왜곡하는 블랙홀 같다. 응시한 정면의 시공간을 제외하면 주변은 안으로 빨려 들어가다. 모두 왜곡된다. 블랙홀을 겨우 탈출한 사건만 그 지평선사이에서 아주 희미하게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간다.
어른들은 시간이 점차 빨리 흐른다고 했다. 그것이 노인네들 입버릇 같았던 시기가 지났다. 얼핏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리라.
나름 늘씬했던 과거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고 여기며 남산처럼 나온 배는 언제든 갈아 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 년이 넘게 흘렀다. 가만 생각해보니 거울 속에 있는 아재의 모습이 앞으로 남은 내 삶 중 가장 젊은 모습이다.
몸이 무거워 허리, 무릎이 버겁다. 서른 여덟이면 다시 태어난다는데 기왕이면 꽤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