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았던 24명은 서로 교류없이 독자적으로 전구를 연구했다. 그러나 '전구'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에디슨'이 됐다. 영국 출신 뉴턴과 독일 출신 라이프니츠는 거의 동시에 미적분학을 개발했다. 다만 그 개념과 방법이 상이하다.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비슷한 연구를 했던 엘리샤 그레이는 두 시간 늦게 특허를 신청하는 바람에 전화기 발명에 대한 영광을 얻진 못했다. 시대를 바꿀 천재가 나타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환상을 우리는 가진다. 다만 역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아이디어는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그것이 사회 전반 이곳 저곳에 떠돌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와 환경, 장소에서 탄생한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겠다는 착각은 결국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하게 한다. 대체로 영감이라는 것은 가슴 어딘가에서 불쑥하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와 사회에 에테르 상태로 존재하다, 어떤 우연의 일치로 발화하는 순간 폭발력을 갖는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발명품과 아이디어가 나오다는 예시는 그 밖에도 얼마든 있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애플'사의 아이폰을 떠올리겠지만 최초의 스마트폰은 IBM사의 사이먼이다. 이는 1992년 IBM사가 설계하여 라스베이거스에서 컨셉제품으로 전시됐다. 최초의 전기차 또한 '테슬라' 사의 제품이 아니다. 최초의 전기차는 내연기관차가 대중화되기 전인 1834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앤더슨에 의해 발명됐다. 사람들은 최초를 기억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다만 사람들은 시장 독점한 결과를 기억하지 '최초'를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독점자'를 '최초'로 왜곡하여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남들과 완전히 다른 '획기적인 아이디어', 독창적이고 완전히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쉽지 않다. 애플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혁신'이다. 애플은 정말 혁신의 아이콘일까? 지금도 기억에 난다. 검정색 화면의 Dos 운영 체제에서 깜빡 거리는 커서를 보며 명령어를 입력했던 기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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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애플 컴퓨터 리사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dos 운영 체제를 사용하고 있을까. 이처럼 단순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화면에 있는 폴더를 누르고 선택하는 방식을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 즉, GUI라고 한다. 이는 스티브 잡스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사의 기술을 차용했다. 그 밖에 획기적인 발명들은 대체로 특허 관련한 법정 다툼이 잦은 편이다. 이는 다른 이의 기술을 훔치겠다는 파렴치한 접근도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술이 사회 전반에 떠오르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 구성원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고 차용하고 모방한다. 누군가의 기술과 생각을 배끼는 것은 물론 도의적이지 않다. 다만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이기에 조금 더 다양한 융합과 자기화가 필요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20세기 일본을 움직였던 엄청난 키워드가 있다. 바로 '카이젠(改善 かいぜん)'이다. 카이젠은 20세기 폐망한 일본을 급성장 시켜 폐망 50년 만에 세계 2번째 경제 대국으로 올렸다. 당시 일본은 미국 GDP의 70%까지 성장했으니 적은 인구로 지금 중국만큼 미국과의 격차를 줄인 수준이다. 일본이 가진 카이젠(改善かいぜん)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카이센은 바로 '개선'이라는 의미다. 일본어 회화에서는 지금도 이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개선은 잘못된 것이나 부족한 것 혹은 나쁜 것을 고쳐서 더 좋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제 성장은 대체로 미국과 독일의 기술을 가져다가 개선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처럼 누군가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발전하는 방식은 자칫 도의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으나 이는 경영전략에서 굉장히 효과적인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술과 방식을 차용하여 더 빠르게 나아가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나만의 기술,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 나만의 길을 찾는 것은 자칫 잘 뚫려 있는 지름길을 두고 돌아가는 꼴이다. 제대로 된 성장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이며 그 지름길은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을 활용하는 것이고 자신 또한 다닌 길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