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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용거래는 어떻게 탄생하나_어나더 경제사

by 오인환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아토스라는 인물이 여관방에서 노름판을 벌인다. 아토스는 있는 돈을 모두 날린다. 돈이 떨어진 아토스는 이때 데리고 있던 하인을 걸고자 했다. 노름판의 판 돈에 비해 하인의 가치가 더 높자, 아토스는 하인의 소유권을 다섯 개로 쪼개는 소유권을 분할을 제안한다.

다른 이야기가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기록 문자는 '회계 장부'다. 수메르인들은 기원 전 4,000년에서 2,000년 경 사이에 점토판에 문자를 기록한다. 내용은 대체로 경제 혹은 거래 관련 내용이다. 빛과 상관에 대한 이야기, 무역과 교역에 대한 이야기, 노동과 임금에 대한 이야기 등이 적혀 있다. 농업 혁명이 일어나고 최초의 문명은 농경 사회였다. 이후 사회는 고민한 적 없는 문제에 직면한다. '농경'은 채집과 수렵처럼 즉각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채집하면 보상은 즉각적이다. 그 자리에서 식량을 나누고 분배하면 그만이다. 반면 농업은 그렇지 않다. 오늘 내일 노동력을 투입해도 즉각적인 보상이 없다. 고로 식량을 미리 지급 받고 노동력으로 되갚거나, 노동력을 미리 투입하고 식량을 일시에 받아야 했다. 지급 지연은 신용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현대 경제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신용경제'란 비교적 최근이 아니라 꽤 오래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식량이 먼저 필요한 수메르인은 식량을 먼저 지급 받고 내용을 점토판 위에 기록했다. 이후 그 가치만큼 노동력으로 되갚았다. 누군가는 노동력 투입 내역을 기록해 두었다가 수확 시기에 더 많은 식량을 배급 받았다. 다시 말하면 고대인들은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니라, '복식부기'를 통해 차변과 대변에 들어갈 내용과 금액을 분개하여 기록한 것이다. 장부상으로 부채나 자본 증가, 이익 등이 기록되면 사람들은 실재하는 물물이 아니라, '미래의 보상'에 대한 권리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철수와 영희가 있다고 해보자. 철수와 영희는 매년 열 한 개의 사과가 열리는 사과 나무 씨앗을 심기로 한다. 이후 씨앗이 자라서 사과가 열리면 그것을 나누기로 한다. 철수는 영희보다 일을 귀찮아 한다. 고로 철수는 1년 간 30일을 일하고 영희는 300일을 일한다. 이때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 한 개가 열린다면 몫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노동력 대비 보상이 합리적이다. 이 둘의 노동력 투입비는 1대 10이다. 고로 철수는 사과 하나를, 영희는 사과 열 개를 가져 간다. 이런 규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부'다. 장부를 얼마나 신용할 수 있는가. 그것을 권력이 보장한다면 그것을 신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다른 상황을 이야기 해보자. 1년이 되어갈 때 쯤, 사과를 하나만 받게 될 철수는 사과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로 영희로부터 네 개의 사과를 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희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사과 열 한 개는 혼자서 다 먹을 수도 없다. 다먹지 못한다면 썩는다. 영희는 철수에게 사과 네 개를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다만 다음해에 수확한다면 사과를 다섯 개로 갚을 것을 요구한다. 영희는 철수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됐다. 고로 그의 상환능력에 의심을 갖는다. 그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의 가치로 사과 하나를 더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제 사과나 화폐가 오고가지 않으면서 영희와 철수는 신용거래를 한다. 신용거래에서 위험 부담에 대한 가치가 이자가 된다. 이 또한 장부에 기록된다.

자본주의는 여기서 특이점이 발생한다. 영희는 사과 네 개를 빌려주고 사과 다섯개를 요구한다. 그러나 위험의 가치로 요구한 사과 한 개는 실재하지 않는다. 매년 열 한 개가 열리는 사과에서는 2년 간 스물 두 개의 사과가 열린다. 다음해에도 철수와 영희는 사과를 똑같이 분배한다. 그러나 철수는 존재하지 않는 사과 하나를 갚을 방법이 없다. 고로 사과 하나에 대한 미수가 발생할 여지가 더 커진다. 철수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러다 옆 마을에 사는 길동을 찾는다. 그리곤 함께 사과 나무를 기르자고 제안한다. 먼저 사과 두 개를 줄테니 수확 후에 셋으로 갚으라는 것이다. 길동은 일단 이 조건을 받아드린다. 일하지 않았음에도 사과 두 개가 생겼고 이후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면 갚으면 된다는 논리다. 이렇게 길동은 일하지 않고 사과 두 개를 얻었다. 자본주의의 꽃은 주식이라지만 열매는 '인플레이션'이다. 자본주의는 결코 후퇴하지 않고 반드시 성장을 기본값으로 가진다. 자본주의는 성장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바로 존재하지 않는 '사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과를 빌린 이들은 받은 사과를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확장되면 인플레이션은 아래로 내려가며 확장된다. 중앙은행이 일반은행으로 돈을 빌려주고, 일반은행이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기업은 성장을 담보로 주주를 찾는다. 다시 이들은 시장에 흩어진 사과를 모아다가 중앙은행으로 보낸다. 즉,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 다단계, 피라미드와 닮았다. 유럽에서 시작한 자본주의는 아시아와 유럽으로 시장을 넓혔다. 이후 시장 점유에 대한 다툼으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홍기빈 작가의 어나더 경제사는 경제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 종교, 사상, 철학, 역사의 이야기를 빌린다. 어떤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이 일방향이 아닐 수 있다는 점. 물물교환에서 점차 신용거래로 금융의 형태가 변해갔다는 환상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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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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