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빨리 벌고 은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파이어족이다. 파이어족은 최대한 빨리 벌고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은퇴하는 것이 목표다. 최대한 빨리 그만 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은 즐거움이 빠진다. 일은 돈을 벌게 해준다. 그러나 일이 돈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예전 존 F.케네디 대통령이 미국항공우주국(NASA)를 방문 했을 때, 한 청소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
그러자 청소부는 답했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돈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다만 그것이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은 우리에게 '돈' 뿐만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선물한다.
이십대 초반, 구글에서 간단한 서칭으로 바이어를 찾은 적 있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귤을 팔고자 해서다. 영국, 사우디, 홍콩,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국가의 바이어를 찾았다.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해외생활이 길었다는 경험은 여기서 유용하게 쓰였다. 마구잡이로 전화하고 문자를 해서 얻은 성과는 '싱가포르'다. 바이어가 상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해당 주 토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내려갔다. 'Fairprice'라는 싱가포르 마트다. 이곳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로 거의 싱가포르 전역을 독점하는 회사다. 주중에는 경연이 있었다. 주중 강연을 마치고 양복과 나름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가지고 제주공항으로, 다시 김포공항으로, 다시 싱가포르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고 내려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내리고 바로 연결된 건물은 회사 본사였다. 본사는 주말이라 한산했다. 본사 1층에는 맥도날드가 있었다. 맥모닝을 먹고 그 옆 1층 화장실에서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했다. 준비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미리 준비한 홍보물을 살폈다. 얼마 뒤 또래 쯤되는 남자가 나왔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나와 비어있는 건물로 갔다. 건물은 불이 꺼져 있었다. 남자는 휴일에 출근한 듯 했다. 간단한 미팅을 마쳤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수입을 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들의 계약 업체 몇 곳을 소개 시켜주겠다고 했다. 계약 업체 대표를 소개 받았다. 이들의 작업장을 갔다. 작업장에서는 다양한 과일을 포장 작업하고 있었다. 상품 설명을 하고 가격을 제시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이어 첫 샘플 물량이 40피트 컨테이너를 가득 채우고 나갔다. 이후 싱가포르는 두 차례 더 방문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돈'이 아닌 '경험'을 남겼다. 언제 해보겠는가. 일은 '돈'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경험, 자부심과 소속감, 사람과 기억을 남긴다. 그것이 '돈' 보다 훨씬 값 나간다. 이렇게 여러가지를 선물하는 '일'을 '돈'과 등가교환한다는 것은 상당한 손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본질'이다. 지금껏 쓴글에 가장 많았던 키워드도 '본질'이다.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내가 정의한 일의 본질은 '돈'이 아니다. 일의 본질은 '영향력'이다. 돈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부속품이다. 영향력이란 이렇다. 자장면 한 그릇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해보자. 이로 누군가는 추억을 갖는다. 자신만의 맛집을 알게 됐을 수도 있다. 자장면을 오랫동안 먹고 싶어 했던 아이일 수도 있다. 단순히 4000원과 자장면을 등가 교환했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나는 얻었고 상대에게 주었다. 그것이 일의 본질이다. 세상에 어떤 방식이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로인해 댓가가 생기는 일. 그것이 일이다.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의 첫 시리즈인 '마법사의 돌'의 출간으로 이미 백만장자가 됐다. '부'를 달성했으니, 그 이후 시리즈는 쓰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시리즈를 연재했다. 최대한 숫자적 목적을 달성하고 은퇴하는 것은 다양한 의미에서 손해다. 자신의 일을 정말 주인처럼 하고 있는가. 정말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기 것이 아니기에 자기 일 처럼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됐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자전거로 쌀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새벽 3시반에 출근하여 마당을 치우고 물을 뿌렸다. 시키지 않은 재고파악과 정리도 했다.
시장은 가치가 먼저 형성되고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품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에 대한 가치가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장은 가치있는 상품에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 고로 가치는 언제나 뒤늦게 쫒아가는 경향이 있다. 태도는 경쟁력이다.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태도는 경쟁력이 된다. 그것은 적당한 시기에 시장에 노출되면 적정 가격을 찾아간다. 시장경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장 경제는 저평가된 상품이나 회사가 어떤 순간이 되면 반드시 재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때로 관심을 더 받고 거품이 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시장은 가치를 평가한다. 그것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가치투자'를 한다. 다시말하자면 일하는 목적이 '은퇴'면 안된다. 우리는 재수없으면 아주 오랫동안 살 수도 있다. 고로 돈만 가지고 아무런 추억도, 기억도, 능력도 없는 무지렁이가 되지 않으려면 통잔잔고가 아니라 스스로 가치있는 시간을 쌓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