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프랑스의 정신의학자는 의대생으로 실습 인턴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자동차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로인해 그는 자동차 정비소를 찾았다. 정비소에서 정비공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연료통에 물이 고여 있는 걸로 봐서는 모터가 녹이 슨것 같다고 말한다. 비슷한 시기, 이 정비소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차를 고치기 위해 온 간호사가 있었다. 간호사에게 혹시 자동차가 이런 증상이 있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대뜸 병원에 망상 증세가 있는 조현병 환자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는 이렇다. 망상증 환자는 자신의 소변이 강력한 연료 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고로 자신의 소변이면 행성 간의 왕복이 가능할 만큼의 열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하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자동차 연료통에 소변을 누었다. 자동차 연료비를 절감해 주기 위한 선의다. 의도는 언제나 결과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선한 의도는 때로 악이되고 악한 의도는 때로 선이 된다. 인간의 역사는 이처럼 어리석음과 지혜라는 두 쌍두마차에 의해 굴러간다. 어리석음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어리석음을 낳았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류역사 최악의 실수는 농업혁명이다.' '제러미 다이아몬드' 또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언뜻 이해가 어렵다. 농업혁명은 문명의 시작이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으로인해 영양불균형을 낳았다. 또한 계급을 통해 불균형한 사회를 만들었고 각종 질병과 전쟁의 씨앗이 되곤 했다. 농업혁명은 가뭄과 홍수 등 배고픔과 같은 원초적인 두려움을 벗어나 미래, 전쟁, 가난 등의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인지혁명으로 한 차원 더 고차원적이게 된 인간이 농업혁명으로 다시 '바보스러움'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 역사에는 이와 닮은 역사가 너무 많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력 혁명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을 갖기 위해 투쟁한다. 자본은 더 많은 생산량을 가질 수 있었다. 이중 거대 자본을 소유하기 위해 소유권을 분할하며 '주식회사'가 탄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권을 나누어 더 큰 자본력을 갖게 되자, 생산성은 폭발한다. 소비 대비 생산이 폭발하자, 시장은 포화에 이른다. 시장을 확장하고 자본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서구는 커다란 배를 증축하여 배를타고 나간다식민지 시대가 열렸다.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나누어 점령하던 시기, 마지막 남은 땅까지 식민지 각중장으로 변하면서 인류는 커다란 전쟁을 하기도 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바보스러움은 '선'을 낳기도 하고 '악'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농업혁명으로 생겨난 불균형과 불합리성은 고대, 근대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그 여파가 이어진다. 우리는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진다. 심지어 성차별과 노예제도를 아주 근대까지 갖고 있었다. 프랑스의 여성참정권은 비교적 최근인 1946년 이후에 생겼으며 1995년까지 미국 미시시피주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다. 지금 현재도 베트남인의 평균 월급여는 30만원이 되지 않는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둘이서 먹으면 한끼 식사에 40만원을 결제하고 나오는 이들이 적잖은 것과 대조적이다. 과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또한 적잖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인간의 수 많은 역사는 언제나 바보스럽다. 인간 개인은 조금 더 현명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바보 같아졌다. 소수 엘리트들과 대중으로 나누어져 대중은 선동당하기 쉽고 엘리트들은 바보은 실수를 저지른다. 고로 대중과 엘리트는 모두 바보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역사는 대중들과 엘리트들의 이야기로 쓰여 있다. 이를 재미요소로 보고 대중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생겨 나기도 한다. 대중심리학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편향 등의 작은 오류가 얼마나 커다란 나비효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