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는 앤트밀(Antmil)이라는 현상이 있다. 수 백, 수 천 마리의 개미가 빙글 빙글 돌다가 전원 아사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군대 개미에게는 시력이 거의 없다. 개미는 길을 찾기 위해 앞 개미 엉덩이를 쫓는다.앞놈의 엉덩이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의 냄새를 따라 가는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개미는 그저 바로 앞의 냄새만 졸졸 따라간다. 대열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의 움직임은 쉼이 없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다. 선발대가 급하게 방향을 선회하면서 이다. 우연히 선발대는 후발대의 엉덩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후 선발대는 본능처럼 후발대의 엉덩이를 쫓는다. 그렇게 개미들은 잘못됐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앞 놈의 엉덩이만 쫒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시작한다. 군대개미는 이것을 자의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갑자기 큰 바람이나 비가 오는 경우의 상황에서 우연하게 풀리지 않으면 스스로 어떤 해결도 불가능하여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전원 아사한다. 맹목적은 왜 위험한가. 맹목적은 심지어 부지런함이라는 무기마저 스스로에게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왜 하고 있는가. 그것을 심도있게 관찰하고 깨닫는 것을 '철학'이라고 한다. 철학은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연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을 고민해 보지 않으면 당연히 주어진 앞 상황을 쫓느라 아사하는 줄 모르는 군대개미의 꼴이 나기 마련이다. 대체로 철학은 나무보다는 숲을 보게 한다.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는데 갇히게 된다.
나의 20대는 안 해본 일이 없다.
서빙, 주방보조, 전단지 돌리기, 정원 관리, 클럽 청소, 아파트 청소, 학교 청소, 과일판매, 길거리 노점, 과외, 번역, 사무보조, 대학입학처 서류 분류, 콜센터 등.
대충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렇다. 이 경험들은 국내외에 걸쳐 있다. 이중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한 적 있다.
20대에 해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집을 들어가지 못하는 어느날, 함께 살던 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일을 나눠서 해? 풀타임 하나를 제대로 하는게 낫지 않아?"
그렇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밤은 클럽 청소를 갔고 월요일에는 정원 관리를 하러 다녔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학교 청소를 다녔고 목요일은 전단지를 돌렸다. 그 밖에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일을 쪼개어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의 말이 맞다. 모든 일을 다 그만 두고, 제대로 된 하나의 일을 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일을 쪼개어 했을까. 이성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하고 있던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그만두는 것이 쉽지 않고 그만 두자마자 바로 풀타임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원인은 당시 나에게는 딱 일주일 정도만 살 수 있는 생활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차하여 일이 어그러지면 돌아갈 비행기표값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최대한 잠을 줄였고 비효율적으로 돈을 벌고 공부했다. 때로 시야가 멀어지고 나면 본질을 잃는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가장 쉬웠던 회계시험을 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회계과목은 낙점을 받았고 그 학점을 매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기껏 해봐야 푼돈이지만, 당시 주급을 받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아가리에 케밥과 코카콜라를 쑤셔 넣던 나였다. 노래지는 하늘은 목구멍으로 밀려 들어간 음식 공급으로 겨우 파란색을 되찾았다. 조금 여유있게 생각해보면 분명 대안은 있다. 처절한 20대를 경험한 나로써 위기에는 사람의 시야가 어떻게 좁아지는지 안다. 유학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지인의 방문 이후였다. 지인은 부유한 집에 살았다. 호주에서 유학하다가 놀러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나의 부탁을 그는 거절하고 방문했다. 이후 후유증은 거의 반 년을 나를 괴롭혔다. 그 반년의 삶은 이랬다. 치약이 없어 옆집 일본인에게 치약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 당했다. 클럽 파티가 끝나고 나면 쓰레기통에 피자며 과일이며, 음식들을 버려야 했다. 쓰레기통에 집어 넣은 음식 중 꽤 멀쩡한 일부를 비닐에 싸가지고 가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샴푸, 바디클랜저, 빨래비누를 사지 못해, 50불짜리 싸구려 비누 하나로 샤워며 빨래를 모두 해결해야 했고 배고픔이 사라지는 '체지방연소제'를 마트에서 구매하고 먹었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시야는 극도로 좁아진다. 분명 한숨 돌리면 더 현명한 방법이 있을텐데, 당장 하루살이 삶을 사느라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부지런졌다. 나의 가난한 젊은 시절은 앤트밀처럼 외부의 우연한 바람을 만나 해체됐다. 스스로는 그 죽음의 뫼비우스를 돌아야 할 운명이었다가, 아주 우연하게 큰 바람으로 앤트밀을 탈출하는 군대개미와 같았다. 그 운이 아니라면 어쩌면 나는 그 자리에서 아사한 일반적인 군대개미가 됐을지 모른다.
맹목적인 부지런함은 왜 악이 되는가. 그것은 시야를 좁게 한다.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은 덮어두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호주머니를 살피고 지나가는 택시가 있는지 고개를 들어보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