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날 제주의 바다는 심하게 일렁였다. 제주를 떠나는 그날, 비행기에서 내려 본 제주의 바다는 이상하리 만큼 고요하다. 인터넷을 보면 우주에서 내려다 본 '태풍'을 볼 때가 있다. 비바람이 몰아오고 엄청난 소음과 혼돈이 우주 밖에서는 잠잠하고 때로는 평화스럽기도 하다.
전쟁, 기아, 차별, 폭력 등 이렇게 시끄러운 지구별을 떠나 태양 공전면 32도 쯤을 지나가던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돌려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별을 찍었다.
'창백한 푸른 점'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창백한 푸른점.
그 푸른점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다. 같은 해, 지구별에서는 독일이 통일을 했고 소련의 위성국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전향하기도 했다. 또한 걸프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시작되기도 했다.
한걸음 멀어 질수록 삶은 침묵을 닮았다. 다시 한걸음을 다가서면 삶은 수다쟁이가 된다. 오늘의 하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시선을 정수리 위로 수 십 킬로쯤 들어올려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스스로 치열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은 사실 출렁임을 표현하기에도 미약하다. 삶을 이렇게 전체적인 맥락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은 별 것 아니며 때로는 더 원대한 방법으로 지금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운전을 하다보면 속도를 높일수록 시야가 좁아진다. '사이버 포뮬러'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이 만화는 자동차 레이싱 스포츠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제로의 영역'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제로의 영역'은 레이스 도중 운전자가 도달하는 영역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도의 예민한 감각이 생기는 구간. 레이서는 차의 컨디션과, 노면의 느낌, 바람의 상태까지 가늠할 수 있어진다. 인간의 감각이 모두 열린다. 그렇게 초월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만화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운전을 오래하다보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또한 시야는 좁아진다.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적잖다. 시야가 좁을수록 더 예민해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우리의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출렁거리고 넘실거리는 높은 파도 혹은 쓰나미도 아주 먼 거리에서 보기에는 잔잔한 파고일 뿐이다.
언젠가 나쁜 일이 있을 때, 친구는 말했다.
"새옹지마라고 있어."
크게 별 위로가 되지 않는 그 말에 친구는 덧붙였다. 자신은 좋은 일이 있으면 이제 곧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마음먹고, 나쁜 일이 있으면 이제 곧 좋은 일이 있겠다고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기고,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더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 이치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그러나 친구의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게 박혀 들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나쁜 일이 있을 때, 더 나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은 거의 확실한 감정이다. 고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결국 이래도 저래도 부정적인 감정으로 심신이 약해진다. 반면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앞으로 이만큼의 굴곡만큼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거나, 나쁜 일이 있을 때, 앞으로 이만큼의 굴곡만큼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자보다 조금 더 단단한 심리적 토양을 갖게 한다.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새옹지마는 가까이에서 보기에 집채만한 파고의 높이라 하더라도 멀리서 보기에는 아주 조그만 출렁임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위와 아래가 번가르며 움직이는 이치에도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야'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속도를 높이고 매몰되어 있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참선하는 스님이나 기도를 하는 목사 혹은 신부 님의 시야는 전지적으로 넓어진다. 그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비교적 자유롭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게 된다. 인터넷 밈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라는 밈이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오히려 좋아'라는 혼잣말을 내뱉는 것이다. 이렇게 내뱉고 나면 상황에 대한 변명을 찾기 위해 '뇌'는 풀가동하여 좋은 면을 찾게 된다. 모든 것은 어떻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로 삶이란 아름다운가? 끔찍한가, 무엇이라 말하던 당신의 말은 곧 정답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