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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고통을 이겨내는 법_내 멋대로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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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이라 잘자야 한다. 그러나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젊을 때는 보약이 필요없다."


보약은 젊음이 꺾인 이후부터 필요하다. 젊음 자체가 보약이기에 젊을 때, 보약을 끊는다고 손해보는 것은 없다.


바쁘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잠이다. 새벽 두 시쯤 잠에 드나. 그러면 6시반에 눈을 뜬다.


진리는 아니겠지만 스스로를 위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반드시 할당량의 고통을 부여 받는다. 그렇게 믿고나면 고통을 받아들이기 수월하다.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신이 부여한 일정량의 고통을 이걸로 털어내는 구나.


그렇게 고통을 털어내는 방식 중 하나가 '잠'이다. 노동이던 잠이던 고통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조절할 수 없다면, 남에 의해 조절 당한다. 알아서 움직이지 않으면 남에 의해 움직이게 되고, 내가 줄이지 않으면 남에 의해 줄여진다. 그것만큼 고통 스러운 것이 없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은 '주체욕'이다. 타지 않고 주차장에 모셔만 두어도 고급 승용차를 갖고 싶어하고, 쓰지도 않으면서 은행이 보여주는 숫자를 높여가는 것도 모두 '주체욕' 탓이다. 주체욕은 바로 언제든 '내마음대로'가 핵심이다.



내멋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을 빈곤하게 하고 초라하게 한다. 자존감을 결여 시킨다. 누구나 주체성을 갖기 위해 발악한다. 시간의 주체성, 노동의 주체성, 삶의 주체성. 그것을 조금 고상하게 말하면 '경제적 자유'라로 표현하는 듯하다.


주체적인 삶은 내인생 제 1번의 원칙이다.


당장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수많은 건물과 자동차, 진귀한 물건들이 쌓여 있다.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과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누구나 밖으로 뛰쳐나가 아무 자동차를 발로 걷어찰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발로 찬 자동차가 나의 것이냐, 남의 것이냐의 차이로 그럴 수 있는지와 없는지의 차이가 벌어진다. 전자는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 후자는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의 차이다. 그것이 주체성이다. 차이는 단지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존재한다. 실행에 옮기지 않는 두 결정의 무게는 겉으로 같다. 그러나 이런 결정의 무게가 다른 결정의 무게를 만들어낸다.


번지 점프를 할 때, 과감하게 뛰어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높이의 공포보다는 안전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줄 없이 뛰어내리는 행위나, 줄에 의지하고 뛰어내리는 행위나 모두 같은 높이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을 갖는다.



새가 높은 나무가지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의 두 날개에 대한 믿음 때문이란다. 상황과 관계의 주체성이 나에게 있는지, 남에게 있는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앉아 있는 새와 두 날개에 대한 믿음으로 확고하게 경치를 즐기고 다음 단계를 생각해보는 새의 다음 단계는 확연하게 다르다.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드릴지에 대한 주체성이다.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남에 의해 하게 된다. 고통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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