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 - 김춘수
Ⅰ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Ⅱ
이미 가 버린 그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充實)만이
익어 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愛撫)의 눈짓을 보낸다.
Ⅲ
놓칠 듯 놓칠 듯 숨 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면은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꽃'으로 많이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다른 시를 읽었다.
왜 읽었는고 하니, 아이와 외출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을 들렸다.
아이는 '아빠 잠시만' 그러더니, 스마트폰을 달라고 한다.
평소 스마트폰을 엄격하게 규제하고자 하는 아버지로써 표정을 구기려고 하는데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앞에 놓인 '꽃' 사진을 찍는다.
'아빠, 이런 예쁜 꽃을 가지구 다녀.'
'찰칵 찰칵' 몇 번 하더니,
병원에 놓인 꽃을 찍는다.
구겨지던 표정의 방향이 갈곳을 잃어 굳어진다.
가만 보니,
내 스마트폰에는 항상 '목적'과 '이유'가 분명한 것들이 담겨져 있다.
왜 나는 꽃이 보이지 않았을까.
왜 아무 이유없이 예쁘다는 이유로 사진 찍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아이가 넘겨준 사진을 보다가 '김춘수'의 꽃이 떠올랐다.
다른 시들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
어쩌면 이렇게 완전하게 와닿는 시들이 많을까.
이래서 시를 읽게 되는 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