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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소멸하라_홀로

by 오인환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는 착각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다만 인생이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지향점이 삶의 목표일 필요는 없다.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일종의 놀이와 닮았다. 스스로 목적의 본질을 지우면 모든 것은 행위만 남는다. 행위만 남은 행위는 본질이 없기에 그저 행위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1891년 YMCA 훈련학교에서 한 교수가 복숭아 바구니에 축구공을 던져 넣는 게임을 발견하지 않았다더라면 '마이클 조던'의 재능은 그저 빨래통에 빨래를 기가 막히게 집어 넣는 사람의 능력과 하등 다르지 않게 된다. 삶이란 그렇다. 그것에 이렇다 할 철학과 명분을 집어 넣어야 그것은 본질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본질의 유무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그것에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다. 그것에 '그것'이라는 이름을 정의하기에 '그것'은 '그것'으로 정의된다. 흘러가는 강물을 가르키며 강물에 이름을 짓는다면 그것은 정말 그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한강' 혹은 '소양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그 찰라의 순간, 그것에는 다른 것들이 채워져 있을 것이고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양과 위치였던 적이 없다. 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가 버리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대상은 사라지고 대상을 닮은 흔적에 관념만 남아, 그것은 우리의 '인식' 상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들어가는 순간부터만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걷어내면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중국 고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데,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앉고 살아가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실제 문제인지를 화두를 던져보면 '문제 해결'의 수준을 넘어 '문제 소멸'이 된다. 가장 완벽한 문제 해결 방법은 때로 문제 소멸이다. 그것을 누군가는 '정신승리'라 부를지도 모른다. 가령 해결할 능력이 없기에 그것을 외면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도피성' 혹은 '외면', '무능', '무책임'이라 불려질지도 모른다. 다만 다시 돌이켜봐라. 누가 가장 완벽하게 문제를 없앴나.

인생은 다양한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능력을 키우고 다음 문제 해결을 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다만 생각해보면 이렇다. 문제를 해결하는 이보다 때로 문제를 소멸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천붕지괴를 걱정하던 '기우'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에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땅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스스로는 어떤 대비책을 가져야 하나.

그렇다. 모든 문제는 정답이 필요하지 않다. 때로 문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과거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적 있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그는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의 크기는 그 무엇보다 강렬했다. 스스로 가장 커다란 부자가 될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에는 확신이 있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던지, '잠재의식'이라던지, 하는 이론들을 보면 이런 조현병 환자가 꿈꾸는 세상이 세상에 펼쳐질 확률도 적잖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되려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을 선택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삼은 문제가 합리적인지 판단하고 그것에 해답이 필요한 경우. 그것의 해답이 가능과 불가능의 구분점을 갖고 있는지, 혹은 '난이도'의 구분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때로 그것은 해결 가능한 영역에 있기도 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영역에 있기도 하다. 가장 이상적인 연애 상대를 나의 반려자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도 그렇다. 그들을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은 때로 '로맨스'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범죄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쌓여 살기도 한다. 무언가에 정답이 있다는 착각에 빠져, 정답 없는 것에 정답을 짓고 그것에 삶을 맞추기도 한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사랑에 빠져, 그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열망이나 사형수가 죄를 짓고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욕망, 너무나 보고 싶은 자녀를 잃은 부모가 딱 한 번만 자녀를 보고 싶다고 여기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욕심.

그것에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 소멸의 방법'이 필요하다. 모든 것에는 정답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경우가 그것을 소멸하는 것이 그 첫번째 단계이다. 세상에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해결법이 아니라, 소멸법을 찾는 것이 문제를 더 빠르게 잊어버리게 한다. 잊혀진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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