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이라는 것은 흔들리는 와중에 맞춰진다. 즉, 흔들려야 맞춰진다. 흔들리지 않으면 균형잡히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균형을 위해 반드시 균형이 틀어져야 한다. 양팔 저울을 예로 들어보자. 양팔 저울에 추를 올려 놓으면 접시가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한쪽의 선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한다고 해보자. 구매자와 판매자는 서로를 모른다. 누군가는 물건을 보내야 하고, 누군가는 돈을 보내야 한다. 이 두 관계는 동등하지만, 반드시 누군가가 먼저 돈이나 물건을 보내는 리스크를 감내 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이 둘 사이에는 적당한 '신용'이 있어야 한다. 혹은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믿기'를 선행해야 한다.
물건을 보내면 값을 지불할 것이라는 믿음.
값을 지불하면 물건을 보낼 것이라는 믿음.
서로를 믿지 못하면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다. 적정 가격을 위해서 기본은 '신용'이다. 상대가 기대를 충족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모든 사회생활의 시작점이다.
반드시 초기에 누군가가 리스크를 감내 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먼저 손해를 봐야 한다. 손해라는 것은 금전적 손해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 혹은 심리적 손해도 마찬가지다. 분명 누군가는 위험 부담을 가져야 한다. 쉽게 말해, 상대가 믿음직한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먼저 선행하는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
직장인이라고 해보자. 시간당 1만원의 계약을 했다고 치자. 계약이라는 장치를 통해 아주 기본적이 교환 보증을 했다. 다만 서로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고용주는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맏길 수 있을지 믿을 수 없다. 고용인도 고용주를 신뢰하지 못한다. 이처럼 신뢰가 쌓이지 않으니, 1대1의 등가 교환을 제외하면 그 어떤 거래도 성사되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중, 누군가가 먼저 상대를 신뢰 함으로써 그 균형을 깨뜨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게 '손해'를 감수하는 리스크를 가져야 한다. 더 쉽게 말해보자. 현대 정주영 회장은 쌀가게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배달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가게 주인과 인연이 된다. 배달일을 하기로 했으면 배달일만 하면 될텐데, 그는 더 많은 일을 한다. 경리를 보거나, 청소, 회계를 돕기도 했다. 심지어 창고 정리까지 깔끔하게 했다. 사장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 3시 30분 그는 먼저 가게로 나가 마당을 쓸고 물을 뿌렸다. 누군가가 보기에 미련하고 멍청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받은 만큼만 하는 것이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정주영 회장은 주고 받는 그 등가교환의 원리를 깨버렸다. 이후 사장은 그를 신뢰하고 이후 주인은 가게를 아들이 아니라 정주영 회장에게 인계한다. 성공은 선불로 지불한 노력의 댓가다.
모든 사람은 상대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인간 세계에서 경계심은 '디폴트값'이다. 경계심이 없는 이들은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침략 당하거나, 전염병을 옮았다. 이렇게 이들이 죽고 후대에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하니, 우리의 유전자는 이기적이고 경계심 많은 유전자들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심을 갖고 있으며 고로 '간보기'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먼저 주는 사람'과 '간 보다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세상 사람의 90%가 '간 보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만약 자신이 '간 보는 사람'이라면 주변 90%의 사람과 어떤 거래도 하지 못한다. 상대도, 자신도 모두 '간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10%의 '먼저 주는 사람'을 만나면 운좋게 거래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다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먼저 주는 사람'이다. '먼저 주는 사람'은 10%의 '먼저 주는 사람'과 만나면 거래가 매우 수월하다. 심지어 나머지 90%의 '간 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거래가 가능하다. 먼저 주었기 때문에 상대가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다. .
고로
취업했으면, 받은 것 보다 더 많이 일해라.
교육하기로 했으면,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알려주라.
대화하기로 했으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주라.
장사하기로 했으면, 아끼지 말고 퍼 주어라.
사업하기로 했으면, 상대를 믿어라.
사랑하기로 했으면, 받은 것 보다 더 많이 사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