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님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나?"
목사 님은 물었다.
"예수 님은 4대 성인이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돌아가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생각이 나질 않았다.
"또...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그것도 맞네. 반은 맞으면서도 반은 틀렸네."
목사 님은 말씀하셨다.
"예수 님이 어떤 분이냐고 묻거든, 이렇게 답하게."
"예수 님께오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자,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네?'라고 묻자, 목사 님은 말씀하셨다.
"따라해보게, 예수 님 께오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자, 나의 아버지 입니다."
나는 목사 님이 읊으신 말을 고대로 읊었다. 이어 이해가 됐냐고 물으셨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2000년 전 이스라엘이 아니라 지금 제주에 계셨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목사 님이 읊었던 말을 고대로 읊었다.
"예수님 께오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자, 나의 아버지 이십니다."
"그렇지"
대답에 만족한 목사 님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침례?' 처음 듣는 말이었다.
허름한 교회 밑으로 내려와 지하에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는 현대 '제네시스'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목사 님은 주차장에 있는 제네시스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그 뒷자석에 앉았다. 나에게 전도를 하고자 했던 이들은 나의 양 옆에 앉았다. 조용한 소리를 내는 자동차가 교외로 벗어났다. 이어 다리를 건넜다. 한참을 더 지나가고 바닷가에 도착했다. 제네시스 트렁크 칸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내린 목사 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은 곳은 부담스러우니, 조용한 곳으로 가는게 어떻겠나."
얼떨떨하게 벌어진 일에 '네'라고 답했다. 목사 님은 길을 인도하셨다. 지나는 길은 모래사장과 돌이 적당히 섞인 곳이었다. 가족 혹은 연인, 친구 단위로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고 간혹 낚시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해변에 서 있는 목사 님은 나에게 하얀색 가운을 입으라고 하셨다. 하얀색 가운을 입자, 목사 님 또한 하얀 가운을 입으셨다. 검정 구두와 정장을 신은 채로 목사 님은 바닷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기세에 눌려 따라 들어갔다. 눈에 띄는 옷을 입은 여럿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은 괴이했을 것이다. 목사 님은 말씀하셨다.
"자네는 과거의 죄를 사함 받고, 구원자로 인정될 거야. 어려운 건 아니니까, 얼른 끝내고 돌아가자."
목사 님은 성경의 일부분을 읽으시고 나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건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의 액션은 허리를 굽히지 말고 양팔을 벌린 채로 머리 끝까지 완전히 물에 잠기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했고 '침례교서'를 받았다. 그래서 내가 기독교인이 됐냐고 묻는다면 답하진 않겠다. 이후 나는 기독교인이 됐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번은 아주 괴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그 구절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구절이 한 동안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걸려 있었다. 누군가는 힘들다고 말하는 '해외 취업'을 '한국'에서 성사한 것은 그 카톡 한구절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사업을 운영하던 사업주는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성경구절'을 프로필에 올린 것을 보고 고용했다. 20대 후반, 아주 짧게 그와 인연을 잇고 100일도 되지 않아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해외까지 날아갔던 경비와 시간, 기회비용을 모두 잃고도 그곳을 나와야 했다. 일상 회화에까지 넘어 오는 '종교'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 불편함은 믿음의 여부가 아니라 서로 사용하는 '어휘'에 대한 차이였다. 성경 말씀을 하실 때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다가,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모습도 낯설었다.
한 번은 서울에서 정착하기 위해 취직 자리를 알아 볼 때 였다. 꽤 높은 급여를 주는 회사를 찾았다. 그곳은 해외구매대행업을 하는 조그마한 회사였는데, 면접을 보러가기로 한 그날 회사 대표와 부장 과장은 사무실 입구에서 나를 서서 맞이하고 있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십자가와 예수 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과장과 부장, 대표는 나를 사무실 안쪽 공간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소파가 있었다. 검정색 정장을 입은 이들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숫자가 끝나고 셋은 동시에 고개를 숙여 정수리를 나에게 보였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 셋은 자리에 앉았다. 대표는 말했다.
"조금 당황하셨죠? 오시는 면접자님들께 모두 똑같이 하고 있으니 부담 갖지 마세요."
대표는 자신들은 사람을 아끼는 회사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면접을 할 때마다, 과장 부장, 대표가 모두 나온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간략한 이야기를 듣고 살펴보니, 회사는 재정은 건실했다. 끝날 쯤 대표는 말했다. 자신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 회사 일하는 분들이 모두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믿음에 연결 됐다고 한다. 이어, 채용자들에게 종교를 강요할 생각도 없고 채용에 영향도 없다고 했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도 과장, 부장, 대표는 나를 사무실 바로 앞까지 배웅했다. 독특한 경험이다.
그러고 내가 기독교인이 됐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번은 '영적치유'에 대해 경험한 적도 있다. '영적치유'라는 말을 들어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다. 아마 믿음에 기반한 상담으로 심적 위안을 받으며 환자의 병을 낫도록 돕는 방식인 듯 했다. 그것을 진행하는 목사는 반드시 '병원'을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에 의존하는 '환자'는 그것을 거부했다. 유튜브에 '영적치유'를 검색하면 병을 치유하는 목사님이 나온다. 암, 백혈병 때로는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이들이 나오고 치유를 통해 완쾌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뒤이어 비슷한 질병을 가진 이들이 줄 서서 치유를 받는다. 그것은 내가 봤던 종교적 경험 중 가장 위험한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기독교'에 그런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굉장히 청빈하신 목사 님을 뵀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봉사를 다니시고 신앙생활을 하셨다. 그때 목사 님이 하셨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다.
"성경을 읽어 본 기억이 있나요?"
나는 있다고 했다.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솔직한 이야기도 했다. 심지어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느 부분을 읽었나요?"
창세기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목사 님은 웃으시며 말했다.
"성경을 읽는 법을 알려 드릴께요."
"구약은 처음 접하는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니, 신약부터 보세요."
목사 님은 신약의 한 곳을 폈다.
"자, 여기 뭐라고 적혀 있나요?"
거기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이라고는 적혀 있으나, 읽어도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휘도 어렵고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어체도 아니었다. 그러자 목사 님은 말씀하셨다.
"안 읽히지요? 성경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셔야 돼요."
과거, '예수 님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나의 아버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독교인들만 사용하는 언어 같은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
그러나 목사 님은 다르게 말씀하셨다.
한 구절을 읽고 그것이 무슨 말인지 곱씹으면서 천천히 음미하세요. 정말 놀라운 것은 문장을 쪼개고 이해할 수 있는 단위로 나눠 곱씹고 음미하니, 그 구절에 말하고자 하는 깊이가 서서히 느껴졌다. 그 뒤로 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결국 기독교인이 됐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