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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책] 돌연변이가 돼야 하는 이유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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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유전자는 강력하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인들은 핏줄에 '직업'을 붙였다. '밀러'는 방앗간 주인, '스미스'는 대장장이, '테일러'는 재단사, '포터'는 '도공'.


가까운 예를 들면 이렇다. 미국 2대 대통령 '존 아담스'의 아들인 '존 퀀시 아담스'는 역시 미국 6대 대통령이다. 조지 부시와 조지 W. 부시는 41번째 미국 대통령과 43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바흐의 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유명한 작곡가와 음악가를 배출했으며 NBA 농구 선수 스테판 커리와 아버지 델 커리는 모두 농구에서 성공했다. 문학에서 '헤밍웨이'의 손자, '에르네스트 헤밍웨이'도 작가 활동으로 유명하다. 유명 영화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의 경우도 그렇다. 존.F.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형제와 아버지는 모두 정치활동을 했고 구글을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는 메릴랜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나사 우주공학 연구원이었다. 일론 머스크의 아버지는 기계공학자이자 사업가였고 빌게이츠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교육자였다. 워렌 버핏의 아버지는 정치인이고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정비공이었다. 대체로 가업을 물려 받고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에서도 비슷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이 매년 시행하는 '신입생특성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 비율은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연구원, 교사, 교수 등 전문직이 가장 많았다. 그 비율은 25~30%를 차지 했다. 또한 경영주나 대기업 간부, 고급 공무원 사회단체 간부 등의 경영직 관리인이 15~20%였다. 다시 말하자면 40~50%에 가까운 서울대 입학생의 부모는 고학력자였다. 반면 부모의 직업이 농축수산업인 학생은 전체 1~3%, 비숙련노동자는 1~2%, 무직이 1~3%이었다. 이처럼 유전자는 강력하다. 그러나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운명론과 닮은 것은 아니다. 우리 유전자에는 언제나 '돌연변이'가 존재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유전학적 이상자들은 기존 환경에 적응한 기성 유전자들과 달랐다. 이들은 변화된 다음 환경에 더 적합했고 이들 중 일부는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했다. 환경의 변화가 유전자 변이보다 빨라진 세상에서 유전자를 따지고 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제의 우성인자가 내일의 열등인지가 되고, 어제까지의 열등인자가 내일의 우성인자가 될 수도 있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스스로 돌연변이가 되어 그나마의 현실에 조금이라도 적응한다면 다음 후손은 그 유전자를 넘겨 받아 더 적합하게 다음 환경에 우성인자로 남는다.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고대 중국에서는 문명 초기부터 '계급'을 나눴다. 대체로 이들은 계급에 따라 할 일을 나눠 분담했는데, 비교적 최근인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까지, '직업선택'을 '유전자'로 결정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그것이 인류사가 수 천년 쌓아올린 경험의 데이터의 값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더 넓은 의미인 자연사에서 돌연변이는 간혹 등장하며 등장한 돌연변이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 그 후손은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경우가 적잖다. 월마트 창업주의 후손은 '월턴 가'로 불린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성공은 그 가족을 모두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고려의 장군 '이성계'의 반란이 성공을 거두며 그의 자손은 500년 간 '왕가'로 지위를 누렸다. 좋은 유전자라는 것은 없다. 지금으로부터 1억 4천만년 전인 백악기 시대에는 '공룡'이 가장 번영한 동물이었지만, 지금 가장 번영한 동물은 '사피엔스' 종이다. 더 연약한 동물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면 과거의 영광이 언제나의 것은 아니다. 모든 유전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은 없다. 과거의 유전인자 중에 나은 것을 취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버린다. 받아들이고 결정하는 것은 지금 환경에 적응하는 이들의 몫이며 이들은 몇가지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돌연변이가 된다. 과거의 나약함이 언제나의 것도 아니고 과거의 강함이 언제나의 것도 아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에 적합한 유전인자가 되는 것이다. 고로 환경을 잘 파악하는 것이 1번이요. 적당한 돌연변이가 되는 것은 2번이다. 환경은 탓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고, 가족과 부모는 탓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며 무엇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스스로 정한다. 후대를 번영케 하기 위해서는 후대에게 잘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은 유전인자가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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