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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 오늘 영화보고 자야겠다_러브레터

by 오인환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은 좋아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감성' 때문인데 뭐라 정확하게 표현하긴 힘들다. 이것은 취향의 영역인데, 언어 특성상 목소리톤이 대체로 높고 연기가 비교적 과하다고 느껴진다. 실제 일본인들을 만나면 그렇지 않은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유독 그렇게 느껴지는 걸 보면 각 국민들이 극을 보는 취향의 차이 때문에 연기 방식에도 차이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드라마도 가끔 어색한 부분이 있어 집중하기 힘든 경우가 있긴 하다. 현실과 꽤 다른 말투와 제스처들은 현실적으로 너무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연기 방식이 어쨌건 분명한 것은 일본어 자체가 한국어 감성과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영상을 보다 보면 간혹 남녀를 불문하고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장면이 나온다. 꽤 비슷한 감성을 가진 이웃국가지만 그 장면만 나오면 완전한 문화적 이질감이 생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고 주관적인 생각이다. 일본 소설로 어떤 작품을 먼저 접하면 전혀 문화적 이질감이 없다가도 영상으로 접하면 꽤 느껴진다. 고로 원작이 소설인 일본 영화는 언제나 실망하곤 했다.

1999년 영화 '러브레터'의 원작소설을 구매했다. 영화는 당시 꽤 유명했다. 설원에서 '오겡끼데스까'하며 외치는 영화 속 모습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행했던 걸로 안다. 매번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추리하는 추리소설만 보다보니, 꽤 잔잔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읽게 된 소설, '러브레터'는 읽으면서 영화로 어떻게 구현했을까, 호기심이 일어났다. 1999년이면 벌써 24년이나 넘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시절 감성을 좋아한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우체통이 온전하게 자신의 역할에 바쁘던 그시절에 대한 향수도 일어났다.

마음만 먹으면 이름과 나이 정도만 알면, 그 사람의 사생활은 물론 생각까지 모조리 훔쳐 볼 수 있는 시대에 '잘못 전달된 편지' 한통으로 시작되는 묘한 인연은 매력적이다. 그것은 소설이 매력적인지,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것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 그 시절 우리는 헤어지고 나면, 다음에 보기까지 실제로 헤어지는 것이었으며,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실제 '그리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살았다. 지금은 함께 있으면서 헤어지면서, 헤어지고 나서도 1분 단위로 상대의 행동을 알 수 있기에,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됐다. 심지어 죽은 이에 대한 과거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빈 공간, 빈 시간에 홀로 앉아 상대의 빈 시간과 빈 공간을 상상해 보는 일은 이젠 판타지 영역이 됐다.

'러브레터'는 죽은 애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죽은이에게 보낸 편지는 장난으로 시작했으나 죽은 이의 이름으로 답장이 오면서 반전을 맞이 한다. 죽은 이의 이름과 성이 같은 누군가와 갑작스럽게 시작된 펜팔. 죽은 이를 사이에 두고 추억을 끄집어내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다시 오지 못하는 감성이 됐다. 모르는 이들과 너무 쉽게 소통하고 심지어 그들에 대해 뭐든지 알 수 있는 시대. 심지어 자신의 신상정보까지 모두 공개해두고 살아가는 시대에서 조심스럽게 묻고, 조금씩 떠올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가까워져가는 이야기. 그때의 감성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일본 소설을 읽다가 너무 만족하면 앞서 말한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원작의 감성이 파괴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다만 이 소설에 대한 영화의 평을 보니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오늘 자기 전, 꼭 영화를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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