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 두 눈은 이상을 향하고, 두 발은 현실에 서

by 오인환


IMG_4331.jpg?type=w580




당신이 믿던, 믿지 않던 기독교가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 로마의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로 성장했다. 당시의 패권국인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사건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세계 패권국 로마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로마를 통해 세를 확장했다. 종교와 정치는 이렇게 서로 물고 물리며 확장됐다.


현대의 로마와 같은 패권국은 어디일까. 미국이다. 미국 대통령 마흔 여섯 명 중 마흔 네 명은 개신교 신자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또한 개신교 신자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머지 두 명인 존.F.케네디와 존 바이든은 천주교 신자다. 결국 우리는 좋으나 실으나 기독교가 만든 세계 질서 아래에서 살고 있다. 마틴 루터 킹, 지미 카터,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링턴 등은 기독교 신자로 이들이 받아들인 철학은 기독교 현실주의다.


기독교 현실주의란 무엇일까. 인류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에서 많은 역사적 경험을 한다. 아돌프 히틀러를 만났고 이오시스 스탈린을 경험했다. 많은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종교인들은 인간이 완전하다는 환상을 깨버린다. 인간이 완전하다는 환상이 깨지면서 종교인들은 더 현실적인 방식의 선택을 원했다. 그 연장선이 종교 철학의 개념에서는 '기독교 현실주의'다.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가 이 개념의 시작이다. 이 개념은 이상적인 목표 뿐만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해가 도덕적 가치와 같은 선상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상적이기만한 결정을 비판한다. 그러나 도덕적 결여에도 경고한다. 이는 현대 미국 정치인들에게 흡수되어 정책 방향에 영향을 끼쳤다. 결국 우리도 이 커다란 흐름에 벗어나 있지 않다. 어쨌건 이 큰 흐름의 처음에는 '라인 홀드 니부어'가 있다.


그의 기도문에서는 이런 합리성을 엿볼 수 있다.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허락하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이 두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요"


어딘가 닮았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은 받아드릴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 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그것을 받아드릴 평온함이 필요하고, 바꿔 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을 구별할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역경과 상황을 맞이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역경이 애초에 이겨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답 없는 문제를 골똘하게 고민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답이 없다면 찍거나 풀지 말아야 한다. 답 없는 문제를 고민할 시간과 에너지는 다른 답을 풀 시간과 에너지를 좀먹는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첫 문제로 미적분이 나왔다면 고민도 하지 말고 찍어야 한다. 만약 운좋게 다음 문제가 구구단이였다면, 하나만 틀릴 수 있다. 만약 만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똘해 진다면 그 뒤에 산적한 쉬운 문제를 모두 틀리게 된다. 현대 우리 삶에 주어진 문제는 미적분보다 복잡하고 때로는 구구단보다 단순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수준에서 무엇을 해결할 수 있고, 무엇을 해결 할 수 없는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세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상적인 방향으로 향하되, 현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두 눈은 이상을 향하고, 두 다리는 현실에 있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상] 죽은 바퀴벌레를 카펫 밑으로 밀어 넣는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