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발] 바야흐로 말하기의 시대, 어떻게 말할까_한석준

by 오인환

말하기는 쓰기와 다르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쓰기'와 다르게 말하기는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 말하는 속도, 표정, 눈빛, 발성, 제스처 또한 듣는 자세 등.

'쓰기'가 정제된 정보를 담는 그릇이라면, '말하기'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글로 읽었을 때와 말로 전달 받았을 때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쓰기'와 '말하기'는 모두 중요한 소통방식이다. 다만 어떤 면에서는 '쓰기'보다 '말하기'가 더 효과적인 전달 방식일 수 있다.

일단 '말하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실시간 소통'이다. 요즘처럼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실시간 댓글 소통이 가능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는 독보적인 실시간 소통 방식이다. 실제로 문자를 주고 받다가 답답해지면, 우리는 1차로 전화를 걸어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2차로 직접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만큼 '글'보다 '말'이 주는 힘이 어떤 면에서 강력하다.

둘째, 말하기는 비언어적 표현을 담는다. 가령 사람은 거짓을 말할 때, 무의식적 특징을 가진다. 눈을 피한다거나, 과정된 손짓을 이용하기도 하고, 음성의 높낮이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빨라지는 경향도 있다. 이런 비언어적 특징을 '글'은 숨길 수 있다. 이는 말하기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셋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앞서 말한 '실시간 소통'과 일맥한다. 대화에 대한 즉각적인 호기심을 해결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책읽기'라는 소통보다는 '대화'를 통한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를 '소크라테스적 대화'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고 자기 인식력을 촉징할 수 있다.

예전처럼 '말하기 능력'이 1대 1이거나 1대 상대적 소수인 경우에는 '말하기 능력'이 한계를 가진 적도 있다. 다만 현대 영상매체의 시대가 오면서 '말하기 능력'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무조건 '쓰기 능력'이 중요했다. 책을 쓰거나 '컬럼'을 작성하는 이들이 다수를 상대 할 수 있었다. 다만 유튜브가 활성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말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상대할 수 있게 됐다. 1회성이라 증발되고 마는 '말하기'의 또다른 단점이 '유튜브'라는 저장 매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글'과 같이 기록어 같은 파급력을 갖게 됐다. 바야흐로 '말하기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유창하게 말하는 다양한 유튜버들을 만나게 된다. 예전 같으면 강연장에서만 볼 수 있거나 술자리 친구들 앞에서만 이야기하던 내용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면서 말하기는 더 빠른 속도로 생각이 같은 이들을 모울수 있는 수단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말하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이에 스피치 코치 '한석준' 아나운서는 그의 저서 '말하기 수업'에서 말 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말 잘하는 방법은 한 두 가지는 아니다. 말이라는 것은 너무나 다양한 능력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고로 단순히 성대를 떨어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분명한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맞는 말을 하더라도 내용에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없는 소리를 해도 말에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컨텐츠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발음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대부분 발음을 연습할 때, 자음에 대해 신경을 쓰곤 한다. '시옷'이나 '히읗'과 같이 발음하기 어려운 자음에 대해 애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뭉게지는 발음의 경우, 그 문제점은 자음이 아니라 '모음'에 있는 편이 많다. 실제로 영어와 한국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에서 음절을 나누는 기준은 '모음'이다. 훈민정음을 살펴보면 한 음절의 구성요소를 '자음, 모음, 자음'으로 구성한다. 이에 첫머리에 자음을 '초성'이라고 부르고 가운데 모음을 '중성', 끝의 자음을 '종성'이라고 한다. 여기에 '초성, 중성, 종성'은 천지인 체계를 따른다. 다시 해서 초성은 하늘, 중성은 인간, 종성은 땅을 가르킨다. 이렇게 하늘과 땅, 사람을 자연적 구성 요소의 대표로 두는데 이것이 삼재론이라는 유학사상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하늘, 땅과 그 지위가 같고 되려 중심이기도 하다. 이 삼재론은 동양 철학에서 균형의 상징으로 '인간'이 설정된다. 다시말해 모음은 '균형'을 상징하고 사람을 상징한다.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모음은 음절의 기준이 되어 명확한 전달을 가능하게 하고 초성과 종성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모음을 조금 더 신경써서 말하는 일 뿐만 아니라 말하기에는 눈빛과 행위도 포함된다. 말을 할 때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일은 현대인들이 자주하는 실수다. 사람의 말은 입을 통해 나가지만 그 방향은 '눈'에 있다. 말은 공간으로 퍼져 목표점을 잃는 '떨림' 즉, '파동'이다. 다만 '빛'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진다. 다시말해 빛은 파장이 짧아 '직진성'이 강하고 소리는 파장이 길어 '전파성'이 강하다. 말은 '파장'을 갖고 있"기에 '전파성'이 강한 반면, 직진성이 약하기에 눈빛으로 그 방향성을 정해 주어야 한다. 다만 현대인의 대부분은 사람과 대화하는 일에 서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과 대면할 때, 스마트폰을 함께 쥐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 눈을 두고 말하는 습관을 갖는데, 이런 경우, 소리의 전달에 반향을 상실한다. 이런 경우는 적잖다. 이는 내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 중 하나다.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다. 될 수 있으면 상대가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대에게 '당신의 이야기에 경청할 준비를 하겠습니다'라는 표시로 전달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하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힘들 여지가 있다. 간혹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에 스마트폰에 신경을 두는 경우가 있다고 할 지 모르겠다. 다만 인간은 반복적인 행위를 학습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사소한 행위는 반복과 습관이 되고 결국 그 행위는 무의식에서 학습한다. 결국 사소한 대화 조차 우리는 '말하기 훈련'의 일부이며 사소한 대화에서도 자신의 습관을 관찰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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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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