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필가 '리베카 솔닛'은 글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일상은 '깨달음' 투성이다. 책을 읽다가, 영상을 보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문뜩의 생각이 배움을 준다.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을 잽싸게 붙잡아 메모해 놓는다. 그러면 그것은 그날의 글쓰기 재료가 된다. 신선한 재료를 잡아다가 메모장에 가둬 놓고, 저녁이 되면 그것을 잘 손질하고 양념을 칠하여 식탁위에 올려 놓는다. 그 요리의 목적은 그저 자기계발이다. 나의 글쓰기는 가르치거나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오롯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할 뿐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캔맥주를 들이키며 적기도 한다. 퇴고는 없다. 일필휘지하고 발행해 버린다. 뒤늦게 올라간 글에서 비문과 오탈자가 보일 때가 있다. 다만 그것을 들여다 보면 고칠 것 투성이다. 쉽사리 건들였다가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 보지 않는다.
독서 리뷰가 나의 글쓰기의 목적은 아니다. 대체로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글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많다보니 독서리뷰가 많아졌을 뿐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세요?"
그러고보면 남들보다는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러나 많이 읽는다는 것은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전혀 아니다. 나의 자부심이라고 한다면 '다독'이 아니라 '다작'과 '다상'이다. 읽는 것은 그저 읽을 뿐이다. 쉽다.
간혹 나의 독후감을 보고 '유익한 책이네요. 사서 봐야 겠어요.'라는 댓글이 달릴 때가 있다. 그러나 나의 리뷰에는 '생각'이 적혀 있지 책 요약이 적혀 있진 않다. 그럴 때면 약간의 뿌듯함과 미안함이 함께 든다. 책의 내용이 아닌, 나의 글을 보고 유익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과 그로인해 그 책을 구매하게 됐으면 기대한 내용이 없을 거라는 점 때문이다.
나는 다독이 아니라 다상과 다작이 자부심이다. 읽은 것을 곱씹고 내 생각과 버무리고 그걸 다시 글로 쓰는 과정이 더 어렵다.
북송 시절, 시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구양수는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고 말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의미다. 이 셋 중 '다독'은 그 차원이 그닥 높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원'이 낮다고 해서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1차원, 2차원, 3차원 처럼 차원이 복잡해진다는 것은 저차원의 것들이 재료가 되어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다독(多讀)은 다상량(多商量)의 재료가 된다. 다시 다상량(多商量)은 다작(多作)의 재료가 된다. 고로 차원이 높아질수록 아래 차원은 더 중요해지며 그것이 근본이긴 하다.
하루를 마치고, 자정이 되기 전, 혼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쓸 뿐이다. 대체로 혼자하는 일이며 철저하게 '보여진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러다 문뜩, 댓글에 내 글에 대한 감상평이 올라 올 때가 있다. 누군가의 글을 재료 삼아 글을 썼는데, 다시 그 글이 누군가의 재료가 된 것이다. 워낙 읽는 책의 종류가 대중없다 보니, 꽤 다양한 사람들과 관심사의 접점이 있는 모양이다.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글은 하나 둘, 비슷한 접점에 있는 이들과 연결됐다. 누군가는 맞지 않아 떠나가고, 누군가는 새롭게 연결되고, 다시 누군가는 떠나가고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맞지 않는 이들과 맞는 이들이 점차 구별되어 간다. 그렇게 모여진 숫자가 대략 지금은 3만 정도 된다. 어린시절 기억, 군시절 추억, 유학생활, 육아 일기 등 개인적인 사생활도 적는다.
첫 번째, 책을 출판하고 내 삶을 아무리 쥐어짜도 책한권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책을 집필 했을 때, 더이상 내가 말할 소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인터넷에 수 천자의 글을 매일같이 쓰면서 이제는 더이상 글을 쓸 소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재는 끊임없이 생긴다. 1천 편이 넘는 4~5천자의 글을 쓰면서, 이제는 더이상 할 말이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글감이 쏟아진다.
네이버 블로그에 쓰인 글들은 잘 모아져 출간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유튜브의 대본이 되기도 하고 일기가 되기도 한다. 그저 하루 3~40분 정도의 글쓰기다. 5년을 매일 썼다. 대충 계산해보면 1000시간은 된다. 1000시간을 앉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고 하니, 하루 30분은 분명 적으며 적잖다.
가끔 댓글로 응원을 받지만 온라인에서 글로써 오는 반응에 대해 실감이 나진 않는다. 그러다 얼마 전, 나를 알아보는 이를 만났다. 수 십만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그녀는 나를 안다고 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 아는지 물었더니, 인스타그램에서 글을 보고 계신다고 했다. 그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챙겨본다고 했다. 심지어 이제는 블로그와 유튜브도 구독했다고 한다.
'저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요.'라고 말했다. 분명히 겸손의 표현은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나게된 구독자는 조금 낮간지럽고 부끄러웠다.
실제로 가끔은 내 글이 혼잣말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댓글에 '오타', '비문'에 대한 지적이나 '팩트체크'를 해주시는 경우도 있다. 간혹 변호사 님이나 의사 님, 선생님들이 살짝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다. 오래 전 기억이다. 한번은 일본식 표현에 대해 지적 당한 적 있다. 당시에는 조금 황당했다. 누구도 당장 조금만 찾아도 채팅용어, 줄임말 등이 범람하는 인터넷에서 '일본식 표현'을 썼다고 지적을 한다는 것에 의아함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책임감을 가지라고 했다. 책임감...
작은 일에도 책임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쨌건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글이라는 생각을 가끔은 잊다가 가끔은 상기하다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