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때 였다. 담임선생님의 출산으로 휴가를 가셨다. 그때 20대 초반 여자 교생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을 대신하여 맡아 주신다고 들었다. 교생선생님은 단발머리에 어두운 정장을 입고 계셨다. 어느 날, 선생님은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진 않았다.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 선생님은 아이들의 책상을 모두 뒤로 밀라고 했다. 책걸상이 모두 뒤로 밀려졌다. 교실을 가득 채웠던 공간이 비워졌다. 대략 절반 정도의 교실이 비워졌다. 선생님은 평소 치마를 입고 계셨는데, 그날은 편안한 추리닝 바지로 갈아 입으셨다.
'웅성 웅성'
자리를 치운 자리에 산만함이 채워졌다. 우리는 책걸상이 없어진 제자리에 서서 정신 없이 떠들었다. 그때 젊은 교생은 교탁 앞, 바닥에 '털석' 앉았다. 바닥은 더럽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닥 깨끗한 편도 아니었다. 1990년 대 후반 어느 쯤이었다. 양초로 목재 바닥에 왁스칠을 하던 시대였다.
선생님은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손을 무릎 언저리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리에 앉아."
쭈뼛거리며 서 있던 국민학생들은 실래화를 벗고 그것을 방석삼아 자리에 낮았다. 누군가는 옷이 더러워진다며 앉기를 망설였다. 그때, 그녀는 말했다.
"눈을 감아 볼래?"
손은 무릎 위에 편하게 두고, 눈을 감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라 했다. 이어 감은 눈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실눈을 뜨고 두리 번 거리는 아이들로 채워졌다. 일부는 키득 거리고, 일부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실눈으로 계속 주변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에 무언가가 보이면, 그것을 보고 있다고 알아차려봐."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말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어봐."
천천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가져보라고 했다. 그때가 뉴스에서 '국가부도'에 대해 한창 떠들 때쯤이니, 그 교생의 나이는 지금 50세 가까이 되었으리라...
그때,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라했다. 그러나 그게 무슨 행동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맞게 호흡을 뱉고 들이 마시길 반복했다. 당시 나는 손바닥에 뜨거움을 느꼈다. 아마 그 감촉은 거짓일 것이다. 조금 더 날짜를 앞으로 당기면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고로 나는 선생의 그 괴기한 동작이 '에네르기파'를 쓸 수 있는 기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수업이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이 끝나고 남자 아이들은 '장풍'을 쏘거나, 염력을 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믿었다.
그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살다가, 문뜩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그 교생은 우리에게 '명상 호흡'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나의 인지능력이 부족하던 시기에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그 과거를 까맣게 잊고 나는 'CALM'과 '코끼리'라는 명상 어플리케이션을 유료 구독하고 있다. 정말 소름이 끼치는 것은 그녀의 나이다. 그녀는 고작 20대 초반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완전한 성체'처럼 보였다. 다만 서른 후반이 된 지금에 와서 보면 20대 초반은 완전 어린 나이다. 그 나이에 이미 '명상 호흡'에 관심을 가졌던 그녀를 생각하면 사제의 연결고리가 그 뒤로 끊겨진 것이 너무 한탄스럽다. 그녀는 이제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을까. 대학을 막 졸업한 애띈 20대 초반 여대생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습관처럼하는 모습은 지금의 나에게도 꽤 충격적이다. 20대 초반, 나는 잠을 줄여 일과 공부를 하기 바빴고, '명상', '마음챙김'과 같은 '마음의 매커니즘'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른도 훨씬 넘어서다. 돌아가는 믹서기 속 덜 갈려진 부유물들이 소용돌이 치며 휘몰아치는 마음의 상태를 진정케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던 시기였다. 그때, '정목스님'의 말씀을 우연하게 듣게 됐다.
'더러운 흙탕물을 맑게 만들기 위해서는 손을 집어 넣어 휘저을 것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떠오르고, 가라 앉도록 가만히 두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가만히 두면 침전물은 천천히 가라앉고 물은 비로소 맑게 된단다. 그 명상의 원리가 가슴팍에 '팍'하고 꽂혔다. 그것이 아니면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명상을 배웠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면 '에네르기파'나 '장풍', '염력' 같은 초능력이 생겨나진 않지만, 비로소 조용해지고 차분해진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장풍이나 염력보다 강한 초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흙탕물처럼 탁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고로 맑은물처럼 투명한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꽤 경쟁력있다. 그것은 장풍이나 염력보다 더 강한 경쟁력을 주고 때로 경쟁력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갑자기 안경을 쓰고 학교에 왔다. 그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자신은 자기가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멀리 있으면 잘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으면 잘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안경을 맞추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원래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보고 사는 줄 알았어."
그 친구의 시력은 마이너스까지 내려가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력이 2.0이던 나는 마이너스 시력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나 역시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세상을 보고 산다고 여긴 것이다. 시력이 무척이나 좋다면 가만히 앉아서 칠판의 내용을 살필 수 있고, 영화 극장의 자막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시력이 나쁘다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시력이 좋고, 좋지 않고가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이 시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는 운이 좋게 자신의 시력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경을 썼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흐릿한 상태로 세상을 보고 살고 있는가.
그것은 가끔 소름끼치는 일이다. 아무도 안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명상은 그런 것이다. 지금이라도 보정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탁한 세상을 보고 있었다고 깨닫는다면... 하루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앞에 구덩이도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