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하기 위해 재료의 이름을 알아야 하듯, 음악을 하기 위해서 음표를 알아야 하듯, 모든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허들이 존재한다. 비록 그것의 허들이 처음에는 장벽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면 그것은 디딤돌이 된다. 문학에서도 그 허들을 넘어서면 비로소 아름다움이 보인다. 누군가는 '주입식 교육'이라고 부르지만, 주입되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를 보면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어떤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제목을 먼저 살펴보자. 이 제목은 무척 재밌다. 봄이라는 추상명사와 고양이라는 보통명사가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비유를 통해서 대상을 표현하는 것을 문학에서는 '은유법'이라고 부른다. 대충은 알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유리 허들이 된다. 유리 허들은 높이가 가늠되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다. 곧 두려움을 갖게 한다. '봄'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비딱하게 돌며 만들어는 온도차다. 기온은 포근했다가 사라진다. 그 현상에 우리는 '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언어로 없는 것을 언어화 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것을 '언표'라고 한다. 언표는 인간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상상의 한계점을 만들기도 하고 명확한 경계선을 만들기도 한다. 수증기가 물이 되고, 물이 얼음이 되듯 형태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명확하게 형태를 갖기 시작한다. 이처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실제화 한 것을 '즉물적'이라고 부른다. '봄'이 '고양이'라는 은유가 바로 '즉물적'이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을 지었으니 그것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없이 바로 관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실제한 것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관념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원래 인간은 '돌'을 인식하는 것보다 '사랑'을 인식하는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 '나무'보다 '믿음'을 인식하는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 즉 관념을 언어화 하는 작업은 인간에게 비물질을 물질화 하여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넘겨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교육은 아는 자가 모르는 자에게 정보를 넘기는 행위임으로 관념을 물질화하여 넘기는 행위는 필수적이다. 어쨌건 이 둘은 비슷한 관념을 가졌다. 둘다 곱고 부드라우며, 때로는 고요하고 포근하다. 그러나 그 안에 역동적임과 생동감도 있다. 시에는 다른 표현도 있다.
시에는 각운(脚韻)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각운은 음율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다. 한자로 '다리 각(脚)'에 '운 운(韻)'을 사용한다. 한자를 사용하니 어렵게 느껴진다.다만 이는 영어에서 '라임'과 같다. 즉 각운은 음악감을 표현한다. 반복되는 음은 리듬을 만든다. 리듬은 재미를 준다. 이는 '문학' 뿐만 아니라, 힙합, 발라드, 댄스 등의 대중음악에서도 사용된다. 즉 특별하게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낯선 개념도 아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이미 비슷한 형태의 다른 것을 즐기고 있다. 고로 우리가 즐기고 있는 어떤 것과 연관하여 보면 꽤 닮은 부분이 많다. 음악과 같이 문학도 만들 때 여러가지 장치를 둔다. 말미에 운율감과 감정을 충분하게 싣기 위해 사용되는 장치도 있다. 종결 어미를 반복하는 경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힙합 그룹 중 '에픽하이'가 있다. '음' 만큼 '가사'가 매력적인 그룹이다. 그러한 면에서 '에픽하이'는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이 그룹의 가사 말미에는 어럽지 않게 '영탄법'을 찾을 수 있다. 영탄법이란 '~도다' 혹은 '~이어라', '~해라'처럼 감탄하며 말하는 기법이다. 이또한 운문을 만든다.언어란 단어의 배열이다. 배열된 단어가 의미의 덩어리를 갖추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언어의 배열 방식은 '의미'를 만든다. 다만 '배열방식'의 변화는 의미를 보존하며 '음'을 주기도 한다.
시짓는 형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면서 달라졌다. 그것을 알기 위해 과거의 시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대체로 '시조'라는 것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을 '평시조'라고 부르는데, 이것들은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꽤 엄격한 규칙을 갖는다. 그것에 '왜?'라고 물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그냥 규칙이다. 누구도 3행시에 대해, '왜?'를 묻지 않는다. 원래 모든 문화는 기본적인 규칙 위에서 변칙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끝말잇기를 하거나 3행시를 짓거나 모두 비슷한 일이다. 어쨌건 우리 조상들은 평시조를 가지고 자신의 문학적 감각을 뽐내고 감탄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 한글 창제에 의해 시조의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시조를 다루는 이들이 '여인'과 '평민'들로 확대되면서 구조가 파괴되고 다양한 형식의 시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조선 후기 시조에는 '작자미상'의 시조가 많다. 또한 이들의 어투는 꾸밈없고 진솔하다. 때로는 경박스러워 보이는 부분도 적잖다. 그러나 그것이 재미가 된다. 그러한 시조를 '사설시조'라고 한다. 사설 시조를 읽으면 현대 우리가 즐기는 '랩'처럼 다양하게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은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다.
두꺼비가 파리를 물고 똥더미 위에 앉아서
건넛산을 바라보니 매가 떠있거늘 가슴이
깜짝 놀라서 풀쩍 뛰어서 뛰어가다가 똥더미 아래 자빠졌다.
아이구, 날랜 나이니까 다행이지 아니면 멍 들 뻔 했다.
이다현 선생님의 생강 국어 '운문 문학 개념'은 역시 다른 '생강 시리즈'처럼 쉽고 간결하게 문학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사실 '문학'을 배우는 것을 대체로 학창시절 멈추지만, 이 글을 쓴 이들은 모두 성인이고 이것을 즐긴 이들도 대체로 그 시절에는 성인들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학생들에게 조차 시험의 전유물처럼 되어졌지만 성인이 보기에 꽤 좋은 오락거리이기도 하다.
또한 생강 시리즈의 경우에는 역시 쉬운 풀이로 인해 가볍게 즐겨 볼 수 있어 좋은 듯하다. 성인에게도, 수험생에게도.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