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을 느낄 때는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슬픔이 느껴지면 큰 소리로 웃으리라.
아픔을 느낄 때는 두배로 일하고,
두려움이 느껴지면 과감하게 돌진하리라.
열등감을 느낄 때는 새옷으로 갈아입고,
무능력함이 느껴지면 지난날의 성공을 기억하리라.
가난함을 느낄 때는 다가올 부를 생각하고,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면 내 목표를 되새기리라.
이제 나는 내 감정의 지배자가 되리라.
나를 파괴시킬 수 있는 무서운 힘과 싸워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절망과 슬픔같은 것들이 나를 파괴시킬 수 있음을 익히 알고 있지만,
웃음과 우정의 손을 내밀며 접근해 오는 다른 것들 역시 나를 파멸시킬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과 맞서기에 앞서 감정의 통제를 절대 멈춰서는 안된다.
자신감에 넘칠때는 과거의 실패들을 회상하고,
평온함이 느껴질 때는 나의 경쟁자들을 떠올리라라.
욕심이 과하다고 여겨질 때는 지난날의 굶주림을 생각하고,
위대하다고 생각될 때는 부끄러웠던 순간을 기억하리라.
많은 돈을 벌었을 때는 굶주린 사람들을 돌아보고,
전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바람을 멈추려 애써보리라.
자만으로 들뜰 때는 허약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내 기술이 으뜸이라고 생각될 때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리라.
내 인생의 책 중 하나로 여기는 '위대한 상인의 비밀'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내 감정의 지배자가 되리라'
개인적으로 이 문장을 제일 좋아한다. 우울한 감정이 든다고, 우울에 빠져 있지말고, 죄절함이 다가와도 좌절에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 그 감정들은 나를 스치고 지나 갈 뿐이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손'에게 '안방'을 내어 주어선 안된다. 나의 주인은 '감정'이 아니라 '나'다. 나는 그 감정이 스치고 지나감을 관찰하는 '관찰자'다.
부질없이 오고가는 것은 '들숨'과 '날숨' 뿐만 아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은 '허상'을 닮았다. 들어왔다가 지나간다. 그것은 머물지 않는 바람과 같다. 형태 없고, 맛도 없으며 냄새도 없다. 그것이 존재가 없으니 허상을 닮았고 의미를 부여할 가치도 없다.
그것은 나를 시험해보고 아니면 말고 스치고 지나간다.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그 바람에 속아 '일생'을 한탄하고, 누군가는 그 바람에 속아 누군가를 미워하며, 누군가는 그 바람에 속아 스스로 목숨도 잃는다. 그 바람은 그저 바람이다. 그것은 만질 수도 없고 머물지도 않으며 머문다고 하더라도 머무는 순간 사라저버린다. 그것은 바람이다. 언감생심,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못된 심술이다. 그저 지나가며 못먹는 감에 아무렇게나 생채기나 내어 놓는다.
그런 고약한 특성 때문에, 그것은 성경에서는 '사탄'이라는 인격을 부여받고, 불경에서는 '마라'라는 인격을 부여 받는다. 이 둘은 하나님과 부처님과 싸우는 존재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내부에 들어 앉아 그 작은 속삭임으로 메아리를 만들어 낸다. 그 메아리는 빈 공간을 두드리고 증폭되어 마치 여럿이 큰소리로 말하는 것 처럼 만들어 낸다. 번뇌, 욕망, 무지. 이건 그저 마음의 장애물이며, 때로는 두려움, 자만, 의심을 만든다.
감정, 이 녀석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여럿의 마음속에 들어와 자꾸 속삭인다. 불교 경전에서 부처가 깨달음을 얻으려 할 때, 그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여 '마라'라는 별명을 가진 이것은 원래는 행복과 기쁨, 즐거움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반대의 모양도 함께 가지고 있으니, 인간이 한쪽 측면을 바라보면 여지없이 반대방향으로 모습을 보여,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을 부르는 이름이 '사탄'이라면 전통적으로 타락한 천사다. 그 모습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순응에서 멀어지게 한 다음, 아주 결정적인 한방을 갖지 못하고 조잘조잘, 야금야금 우리를 갉아 먹는다.
그것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알아 차려야 한다. '감정'이라는 녀석은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 한다. 녀석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똥과 오줌을 뿌려대고 발톱으로 사방팔방을 긁어 놓는다. 그것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반응하기'이며, 그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이내 고요해진다. 녀석의 배를 곪게하여 잘 길들이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충성스러운 충견이 되지만, 천성이 들개라 그것은 천방지축 주인을 몰라본다. 녀석의 주인은 나이며, 언제든 걷어 차 방에서 쫒아낼 수 있고 굶겨 죽일 수도 있으며 누가 주인인지, 주도권을 상기시켜주지 않으면 주인도 물 기세로 달려드니, 녀석에게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잘 일러주어야 한다. 그들을 탐을 내는 먹이는 나의 손에 쥐어 있다.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그것이 삶을 바꿀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