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책을 읽어도 머릿속으로 안들어오는 이유_문해력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한 번 이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
깨끗하고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색은 백색이다. 백색이 가로 대 세로의 비율 3대 2로 펼쳐져 있다. 가로가 세로보다 1.5배 더 길다. 가로가 150cm라면 세로는 100cm다. 이 중앙에는 세로 길이의 절반에 해당되는 지름의 원이 있다. 백색의 길이가 100cm라면 원의 지름은 50cm다. 이 원은 기하학적으로 정확한 반원 둘로 형성된다. 이는 완벽한 원의 일부, 즉 반원의 합니다. 이 원의 곡률은 반지름의 역수로 정의된다. 다시말해, 원의 각 반원의 곡률은 해당 반원의 반지름의 역수다. 가령 원의 전체 지름의 백색의 세로 길이의 절반이라면, 각 반원의 지름은 백색의 세로 길이의 4분의 1 크기다.
수학적으로 원의 곡률을 k라고 두고 반지름을 r이라고 하자. 이 경우 k는 r분의 1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원의 각 반원에 대한 곡률은 백색의 세로 길이 L에 대하여 k는 L분의 1이 된다. 고로 원의 각 반원의 곡률은 백색의 세로 길이 L에 대해서 L분의 4가 된다.
이런 곡률은 원의 완벽한 반원 형태를 이루게 하고 균형과 조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색의 중앙에 위치한 이런 반원의 합형 주변에는 세 개의 수평선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호가 끊어지거나 연결되어 있다. 이 기호는 선을 원소를 표현한다. 왼쪽 위에는 하늘, 왼쪽 아래는 불, 오른쪽 위에는 물, 오른쪽 아래는 땅이다.
이 설명을 접하자마자 '태극기'를 떠올렸다면 꽤 대단한 문해력을 가졌을지 모른다. 이처럼 '언어'는 불완전성하다. 언어는 정보를 담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다시 재출력하여 정보로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각기 자신만의 '프린터'를 가지고 있다. 입력 같은 같지만 어떤 프린터로 출력하느냐에 따라 출력값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태극기가 만약 펄럭였다면 이것을 언어화하는 과정에는 더 복잡한 수식이 필요할지 모른다. 언어는 정보를 담고 출력하는 도구다. 누구나 쉽게 언어로 정보를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을 출력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문자를 읽는데에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는 문자를 음성화하는 것이다. 가령 글을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만약 '부베뷰 리르 세시'이라는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이렇게 적혀 있는 문장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우리는 한글을 읽을 수 있고 말 그대로 그것을 음성변화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다. 만약 프랑스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것을 읽을 수 있나요?'라는 프랑스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문자를 '음성화'하고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두 번 째다.
세번째는 그 의미를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언어에서 문자가 발명된 것은 대략 5000년 전이다. 그것도 회계를 목적으로한 쐐기문자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450만 년 전 쯤에 살았으니, 대략 449만 5천년 간 인간의 진화는 '문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고로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정보를 기억하는 방식은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다. 우리는 3차원으로 기억한다. 문자나 말은 1차원이다. 이것은 모노모드로 형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선'이다. 좌에서 우로, 앞에서 뒤로의 일렬정렬 방식으로 정보가 나열된다. 다시말해, 글의 앞부분을 빼버리거나, 뒷부분을 빼버리면 빠진 부분에 대해 전혀 우리는 알아 낼 수 없다. 말도 마찬가지다. 앞부분이나 뒷부분을 빼버리면 우리는 그 빠진 부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태극기'를 그린 그림에서 임의의 위치에 있는 픽셀 30%를 지워버려도 우리는 그것이 태극기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데 사용하는 '인지능력'은 한정적이다. 고로 우리는 문자를 '음성화'하고 그것을 다시 '의미화'하고 다시 의미를 '이미지화'하는 여러 작업을 거쳐 정보를 재생시켜야 한다. 소설을 읽을 때, 누군가는 눈과 글을 접촉시키는 순간, 그것을 이미지화 하여 상황을 '재생'하는 이가 있고, 어떤 누군가는 글자를 '음성'으로만 전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음성'을 '의미'로만 바꾸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를 다르게 한다.
'사과 하나'를 떠올려보자. 이것을 한입 베어 물고 제자리에 넣었다고 해보자. 다시 그 사과가 파란색이라고 해보자. 그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그럼 이제 '한입 베어 문 파란색 사과'를 머리로 그릴 수 있다. 이 사과와 최초의 '사과하나'와 이미지로 볼 때, 인식에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은 같다. 다만 이것을 언어화하게 되면 다양한 구조로 이뤄진 수식어가 들러 붙는다. 이것은 한번에 인식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이것은 최초에는 학업 성적의 사소한 차이가 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저장된 정보'에 대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커다란 격차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