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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모두가 별빛 같은 시한부의 삶을 산다_나는 앞

by 오인환

아득히 빛나며, 덫없는... 모두가 그렇다. 별처럼 빛나는 시한부 삶을 산다. 그것은 타버리며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빛은 본질을 두고 수 억 광 년을 날아온다. 날아 온 빛은 본질이 사라진 순간에도 여전히 빛난다. 그것이 여기에 닿아 어떤 싹을 틔우고 어떤 에너지가 되는지 본질은 알지 못하지만 역시 그것은 이곳에 심어져 새로운 싹으로 생명을 만들어낸다. 빛은 생각을 닮았다. 찰라의 순간만 스쳐 지나간다.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잠시 닿고 사라질 뿐이다. 그 찰라의 순간을 위해, 빛은 수억 년의 시간과 수억 광년의 과정이 필요하다. 짧은 만남을 하고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빛과의 만남, 생각과 감정이 전달되는 과정은 그래서 아주 고귀하다. 별빛은 얼마나 달렸을까. 얼마나 무수한 공간과 시간을 얼마나 홀로 내달렸을까. 그러니 여기 지금 이순간, 그것들을 허투루 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이 일회성이다. 빛처럼 멀고 길다. 시공간을 달려오며 스치듯 지나간다. 다가오는 인연과 운명, 시간도 그렇다.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맞이할까. 몇 번의 오전 10시를 맞이할 것이며, 몇 번의 월요병을 앓게 될까. 모든 것은 유한하다. 유한한 것은 희귀하다. 희귀한 것은 필요로 할 때, 가치 높아진다. 고로 모든 것을 필요로 하면 모든 것은 가치 있어진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모든 것은 고귀해진다.

안타깝게도 인간에게는 80만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빛을 본 이후로 이 유한한 카운타다운은 시작된다.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희귀해진다. 채워짐 없이 매순간 소비해 버리는 이 유한한 가치는 매순간이 더 고귀해지는 까닭이다. 유아기를 지나고 청년기를 지나며 의식없이, 그것을 소진해 버리지만 그것을 후회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의식하는 그 순간에도 그것을 소진하고 있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어쨌건 매순간은 소진으로 전속력을 달리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 대부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데, 눈을 감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살있는 것 같은데, 살고 있지 않다. 인생 80만 시간중 30만 시간은 자는데 사용하고 눈 깜빡거리는데에도 9년이나 사용한다. 평생의 40퍼센트를 눈감고 있는데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나. 나머지 60퍼센트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인지하지 못하는 매순간에도 별빛은 끝없이 날아온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어떤 별은 죽어 버렸을 것이고 어떤 별은 새로 태어났을 것이다. 어둠을 없애기 위한 최선의 빛도 있고, 밝히기 위해 발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작고 하찮아서 신경에 쓰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타버린다.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순간에 그것은 전부 소멸 중이다. 더 태울수록 빨리 소멸하고, 열정적으로 탈수록 수멸한다. 소멸하는 순간도 마저 소멸 중이다. 최선의 타오름으로 소멸해 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여운으로 잠시 남았다가, 그것마저 소멸해버린다. 모두는 시간이라는 진통제를 치사량까지 투여 받 소멸해 버리는 죽음을 향한 여정 중이다. 책장에는 이미 소멸해버린 별의 여운들이 있다. 그것이 타버려 남겨진 흔적이 몇 백 페이지 위에 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정된 순간을 살고 한정된 공간을 살며 소멸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소멸해버린다.

시간의 유한성과 삶의 허망함은 잠시남아 머물다가, 그마저 소멸해 버릴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으로 앉고 사는 듯 하지만, 그것을 몇 번 떠올려 보지 못하고 죽는다. 특히 골똘하게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는다면 경험한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한줌의 재가 되어 흔적도차 사라진다. 그것은 '빛'과 같이 멈추지 못하고 잡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가. 얼마 전, '사카모토 유이치'라는 인물이 별이 됐다. 함께 시대를 같이한 인물 중 누군가의 생이 마감됐을 때, 그가 곧 '역사'가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어린시절, '정주영 회장'이 생을 마감했을 때, 아버지는 대한민국이 끝났다고 생각하셨다. 8년 뒤에는 마이클잭슨이 죽었고, 다시 2년 뒤에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지금은 '죽은 후'가 더 익숙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생과 함께 살고 있을 때, 나는 일상에 치여 살다가 불현듯 그 죽음을 봤다. 어쩐지 알고 지냈던 누군가의 죽음 같아, 믿겨지지 않으면서 때로는 그 본체를 떠난 빛이 시간과 공간에 남겨 놓는 흔적들로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이 생각을 읽으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채, 빛만 가지고 수 십 억 광년을 날아온 빛의 흔적들처럼 영롱하게 빛나지만 만질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저 그것은 그것으로 완전하게 존재하며 아주 멀어져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서 어떤 것은 사라져가고 있고, 어떤 것은 만들어가고 있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언젠가 소멸하겠지만, 그것이 어두운 어딘가를 얼마간 빛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은 단 한번도 완전히 어두워진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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