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Jan 24. 2024

[읽을책]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_책을 읽어야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같은 한국말이라도 누군가는 이해하고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학창시절에는 '학력'의 격차를 만들고 사업에서는 성인이 되면 '소득'의 격차를 만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는 관계에서 형성되고 관계는 소통에서 만들어지며 소통은 언어에서 이뤄진다. 교육은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과정이다. 고로 학교와 사회는 소통능력을 평가하여 그 능력에 맞는 지위를 부여하게 한다. 말 그대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독서'의 중요성이다. 혹여, 자신의 문해력에 대해 학인하고 싶다면 아래와 같은 글을 살펴보자.

 "책에 대한 기호가 지성과 함께 커진다면, 우리가 보았듯이, 그 위험성은 지성과 함께 감소한다. 독창적인 정신은 독서를 자신의 개인적 활동에 종속시킬 줄 안다. 그에게 독서는 그저 가장 고결한, 무엇보다 가장 고상한 소일거리일 뿐이다. 독서와 지식이 정신의 깊음에 자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의 감성과 지성의 힘을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만, 우리의 정신적 삶의 깊이에서만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의 태도 교육이 이루어지는 건 다른 정신들과의 접촉 안에서, 다시 말해서 독서 속에서다."

 이 글은 프랑스 소설가, '마르쉘 프루스트'의 글이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글이란 쉽게 읽히고 주어와 술어가 짧으며 간결한 글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글'은 그렇지 않다. 고로 대부분의 사람은 '이 글'에게 혹독한 평가를 남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것이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글의 목적은 반드시 많은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어떤 글과 말은 지역이나 직업에 따라 사회적 방언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의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쉽게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의사들이 자신들의 약어를 사용하거나 외국어를 사용하듯,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사회적 권위를 가질수록 친절은 베풀어지지 않는다.

 서구권 글의 경우, 학술적으로 그 지위가 견고하다. 고로 그들은 동양인을 위해, 간결하고 쉬운 문장을 구사하려 하지 않는다. 영어의 경우, 문장이 길고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 이유는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세부정보로 순서대로 나열하기 때문이다.  '철수가 영희와 밥을 먹었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말의 경우는 대체로 머릿속으로 문장의 형태가 구조화 된 후 나열된다. 다만 영어의 경우는 형용사가 명사보다 뒤로가기 때문에 수식어구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희'를 수식하기 위해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쓰고 싶을 때, 우리는 형용사를 먼저 말한다. '아름다운 영희'처럼 말이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수식 받는 명사가 앞으로 간다. '영희' '아름답고 예쁘고, 지난주에 만난' 이런 형용사를 끝없이 늘어 붙일 수 있기 때문에 간결한 언어를 좋아하는 동양인의 경우, 서구권 문장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는다. 다만 영어는 말을 하며 혹은 들으며 수식어를 뒤로 붙이는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 구조적으로 영어권은 부사, 형용사, 명사구가 추가되며 글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는 유연성을 가지고 다양성을 가질 수 있지만 문장이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학술적 가치를 가진 글의 경우, '영어'가 가진 비율은 무시할 수 없다. 문서화 된 언어 중 90%이상은 영어로 되어 있다. 고로 영어를 읽는 것 혹은 영어를 직역한 문장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학술적인 면에서 그렇다. 고로 수학능력평가 시험은 지저분하고 긴 글을 얼마나 이해 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경우가 많고, 방향성의 면에서 이런 접근은 나쁘지 않다.

 다음은 수능 모의고사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다.

"Sailors who select a port because they are driven to it have scarcely one chance in a thousand of dropping anchor in the right one."

대부분의 학생은 이런 글을 만났을 때,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영어가 아니다. '글' 그 자체다. 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보자.

 이 글을 번역하면 이렇다.

"강요로 항구를 선택하는 선원들은 올바른 항구에 닻을 내리는 기회가 천 번 중에 겨우 한 번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은 이해되지 않은 문장을 만나 '해답지'를 볼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가질 것이다. '한국어'로 된 글 조차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이 글을 깔끔하게 이해가 가능한 범주로 수정해보자.

"선원이 있다고하자. 그 선원은 항구를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이 강요된다고 해보자. 만약 올바른 항구에 닻을 내리고 싶다면 과연 내릴 수 있을까. 아마 천번 중 한번도 되지 않는다."

 깔끔하게 정리된 글은 분명 보기 편하다. 그러나 모든 번역이 이처럼 깔끔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부분은 '원어'에 대한 곡해를 막기 위해, 독자 스스로가 직접 이해하길 권장한다. 고로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이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지, 학습을 받을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우리가 접해야 하는 글은 이런 외국어 뿐만 아니다. 대체로 '한자어', '학술용어', '고대어' 등이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며, 꽤 복잡한 번역체의 글도 자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좋은 글을 많이 만나는 것 뿐만아니라, 복잡한 글 그 자체를 인식의 범위로 넣는 훈련이 중요하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의 문제다. 고로 어려운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하는 행위 또한 천천히 차분히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야 할 훈련의 문제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하루키'를 읽게 되는 이유_도시와 그 불확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